오늘 수요일 한나 여전도회의 헌신 예배 후 다과회에서 여러 장로님 - 집사님들 사이에서 송현석 집사님이 올리신 이 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수송교회의 여러 여러 장로님 - 집사님들은 작금의 시국에 대한 우리 수송교회 청년들의 행동하는 양심을 높이 치하했습니다. 여러 장로님 - 집사님들을 대신해서 참고로 작년 여름에 김상회 한백연구재단 부소장이 발표했던 글을 올려 격려를 대신합니다. 그 기백이 오랫동안 시들지 않기를...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 걱정이다. 폴리스의 장래가 걱정이다"



그리스 아테네 건축물 파편에 새겨져 있던 아테네인들의 우려다. 3000년전부터 젊은이들은 항상 버릇이 없어 기성세대들의 걱정의 대상이었나 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리스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약 3000년간 100세대에 걸쳐 젊은이들이 한세대를 거칠때마다 한단계씩 지속적으로 버르장머리가 고약해졌다면 지금쯤 모든 세계는 그야말로 예의범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물의 왕국'쯤 되어 있어야 할텐데 고대 그리스 시대나 현재나 모든 사회의 예의범절은 대동소이하다. 여전히 기성세대는 근엄하고 젊은이들은 제아무리 버릇이 없어도 아테네 젊은이들 수준의 '버르장머리 없음'에 머무른다.



결국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되면서 사회화과정을 거쳐 예의범절을 받아들이고 그다음 세대의 버릇없음을 개탄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을 뿐이다. 지금도 그 과정은 되풀이되고 있고 앞으로도 물론 계속될 것이다. 젊은이들의 버르장머리에 관한한 '사회화, 기성세대화'는 우리사회를 '동물의 왕국'쯤으로 전락시키지 않는 안전판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개혁'의 문제에 들어가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3000년전부터 젊은이들의 버르장머리를 개탄해 왔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의 버르장머리가 3000년전보다 더 나빠지지 않았듯이, 3000년 전부터 '개혁'을 말해왔지만 지금의 사회는 3000년 전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3000년간 개혁이 줄기차게 이루어져 왔다면 지금쯤 우리는 유토피아에 살고 있어야 마땅하지만 3000년전에 제기된 똑같은 문제를 놓고 개혁해야 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젊은이들의 버르장머리가 3000년 전보다 크게 더 나빠지지 않았듯이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모습도 크게 더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3000년 전에 쓰여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읽다 보면 이것이 3000년 전에 쓰여진 문헌인지 작년쯤 출판된 신간서적인지 혼란스럽다. 쓴 웃음이 나올 정도로 3000년전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정치에 대해 고민한 똑같은 문제를 놓고 우리는 오늘도 고민하고 있다. '개혁'의 대상도 대동소이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3000년 전에 했던 고민의 리스트: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수밖에 없다"

"권력은 권력자에 의해 부당하게 행사될 수 있다"

"권력은 부패한다"

"정치권력과 금권이 결탁한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3000년간 끊임없이 '개혁'의 리스트에 올랐던 문제들이고 현재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고민거리들이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에서도 일정 부분 문제의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모두 극복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를 포함해 그 호칭을 무엇이라고 하든(후진국, 제3세계, 개발도상국 등등) 많은 사회에서는 3000년 전보다 오히려 악화된 '고민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문제들이다.



무슨 영문으로 3000년간 계속된 '정치개혁'의 성과가 이리도 보잘 것 없을까?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 자유당 정권에 도전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못살겠다 갈아보자" 구호이래 현재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50년간 어느 정권도 '개혁'을 부르짖지 않은 적이 없다. 개혁이라는 말만 들어도 넌더리가 난다는 사람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개혁피로증후군'이라는 용어까지 생길 정도로 '개혁'을 외치고 시도해 왔지만 실질적인 '개혁'의 성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또 다시 5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문제를 놓고 설전과 혼미를 되풀이하고 있다.



왜 이렇게 우리의 정치 개혁은 대개는 다람쥐 체바퀴 돌 듯하고, 가끔은 시지프스의 바위 덩어리처럼 또 다시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할까? 개혁은 '수구'세력의 저항과 반발로 무산되지 않는다. 개혁은 항상 배반당했다. 개혁가들은 항상 약속을 어겼고 배신했다.배신자는 다른사람이 아닌 개혁을 외친 젊은이 바로 그들이다.



2002년 개혁을 바라는 젊은이들의 열기는 개혁을 말하는 노무현 정권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가히 현대 프랑스 정치사의 최대 변혁이라고 일컬어지고 '혁명(혹은, 유산된 혁명)'이라고까지 불리우는 1968년 5월 파리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결합한 사회변혁운동과 흡사한 열기였다. 그러나 1968년 파리의 5월 혁명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남긴 것이 있다면 드골이 사임하고, 학생과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재정지출로 70년대 내내 프랑스 경제가 휘청거렸다는 '사실'이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요구한 실질적인 사회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후일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파리의 5월혁명을 한편의 '사이코 드라마(psycho-drama)' 혹은'거리의 광대극(street theatre)'이었다고 평가한다.



누가 파리의 1968년 5월 혁명을 배신했을까? 5월 혁명의 선봉에 섰던 개혁의 젊은 주체세력들이 배신했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프랑스 사회가 선망하는 은행, 정부조직에 진출했고 곧 '기득권 세력' 혹은 '사회주류'에 진입했다. 기득권을 얻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이상 '사회정의'를 외칠 필요가 없어졌다. 페루의 수도 리마와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가장 대표적인 강성 학생운동의 도시이다. 모두 100년간 혁명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던 도시들이다. 그러나 이제 페루나 멕시코의 기득권세력 어느 누구도 페루의 모택동주의 혁명세력인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이나 멕시코의 사파티스타(Zapatista)'민족주의,좌익' 학생운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만 하면 모두 변한다는 것을 모두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생 운동가들이 '좋은 직장' 혹은 '정계진출'을 위한 수단으로 '운동'하고 있다고까지 믿고 있다. 실제로 많은 페루와 멕시코의 대표적인 젊은 대학생 '좌익'운동가들은 졸업 후에 일순위로 정부 요직과 집권당에 '취직'한다. 그리고 개혁의 목소리는 사라진다. 혹은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자고 '보수'의 목소리를 높이고 '개혁저지'의 선봉역에 나서기도 한다.



나이지리아의 대표적 문필가인 치누아 아치비(Chinua Achebe)는 나이지리아의 배신당한 민족주의 혁명운동의 실패를 그의 소설 '국민의 사람(A Man of People)'에서 오딜리라는 혁명가의 입을 통해 고발한다.



"비가 퍼붓는 밖에서 막 들어와 몸을 말리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자는 다시 밖으로 나가기를 실내에 있던 자보다도 오히려 더 꺼린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지옥인들 못가겠느나'고 외칠 만큼 오랫동안 실내에 있던 사람들이 너무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고생끝에 앞서의 권력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집으로 겨우 비집고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남들이 못 들어오게 바리케이드를 쳐버렸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쫓아낸 권력자들과 똑같아졌다"



이러한 사례들이 비단 나이지리아, 페루, 멕시코에만 국한될까? 우리는 예외일까. 현재 개혁세력에 의해 '수구꼴통'으로 매도당하는 많은 정치인들 중 상당수는 그들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여 기득권세력이 되기전에는 개혁세력을 대표한 4.19세대, 6.3세대의 대표주자들이었다.



386세대를 대표하는 어떤 젊은 정치인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려 구설수에 올랐고, 또 다른 386 대표는 '5.18 광주술판'과 철새행각으로 모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예의범절을 갖추게 되듯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개혁과는 멀어지고 보수적이 된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 "나야말로 변치 않을 진짜 개혁의 사도"라는 또다른 많은 '개혁 정치인'들이 목소리 높여 과거의 단죄와 청산, 그리고 '진짜 개혁'을 주장한다. 그들은 정말 페루, 멕시코, 나이지리아의 '개혁 장사꾼'은 아닐까? 그들은 정말 우리를 배신하고 진정한 개혁을 배신한 4.19, 6.3세대, 혹은 386 개혁가들과는 다를까?



우리의 2002년 12월이 파리의 1968년 5월처럼 훗날 어느 역사가에 의해 한 편의 '사이코 드라마, 거리의 광대극'으로 기록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개혁세력이 스스로 한 약속을 쉽사리 배신할 수 있도록 국민이 감시를 게을리하고, 냉철한 판단없이 부화뇌동하고 또 속는다면 아마도 우리의 2002년 12월은 파리의 1968년 5월로 기록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