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성금요일) 사순절 제39

연약함에 공감하시는 주님

 

오늘의 말씀 읽기

시편 22:1-8; 이사야 52:13-53:12; 히브리서 4:14-16; 요한복음 19:23-30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지킵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4:14-16)

 

오늘의 말씀 묵상하기

몇 해 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어려움이 닥쳤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조사하였는데, 우리나라는 35개 회원국 중 맨 꼴찌였다.

불안과 우울감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오늘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sympathize) 분으로 증언한다. 마태복음 9:36 불쌍히 여기시어‘compassion’으로서 동정과 같은 의미인데, 주님은 민중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공감으로 사역하신 것이다. 하나 님의 인류구원의 상징인 출애굽 사건도 공감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3:7)고 하셨는데, ‘안다는 것은 저들의 고통에 공감하셨다는 뜻이다.

성금요일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절규하시더니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시고 돌아가신 날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22:1)는 허망하여 탄식하심이 아니라, 자신과 공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이사야서 본문은 우리가 주님의 질고와 슬픔에 공감하지 못했음에도, 주님께서 우리 대신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았 다고 증언한다. 여인들은 주님의 고난에 공감하여 십자가 곁을 끝까지 지켰고, 아리마대 요셉은 주님의 죽음에 공감하였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요구하여 장례를 치루었다.

저명한 종교학자 케렌 암스트롱은 공감이 종교의 본질이고, 공감은 깨달 음으로 가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주님의 공감하심이 빚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아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은 존재이다. 오늘 성금요일에 주님의 처절한 십자가 수난에 깊이 공감하고, 늘 우리와 공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깨달으면, 언제든지 담대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가 풍성한 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주님의 제자답게 일상에서 약자들에 공감하며 살면, 우리를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앞당겨질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마음이 무디어 십자가 고난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를 다시 품어주시옵소서. 이제는 감사함으로 약한 형제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믿음의 확실한 길을 갈 수 있도록 공감케 하시는 성령으로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실천

오늘 아픔을 지닌 약자들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연대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