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을 기다렸던 한마디 말





울드 부부는 1967년에 그들의 다섯 살난 아들 아더가 정박아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울드 부부는 아이가 가족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그 사랑에 보답하지도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아이를 정박아 수용소에 보내지 않고 그들의 집에서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보답을 바라는 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울드 부부는 가급적이면 아이를 정상인처럼 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데려갔고 평일에는 특수학교를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바보처럼 웃기만 할 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열여덟 살이 된 아더는 장애아 학교를 졸업하였고 부모들은 장애아들이 모여서 일하는 작업장에 보냈다.


그러나 아더는 일하기 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1991년 아더는 20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장애인 작업장에서 간단한 전자장비를 조립하는 일을 배우게 되었다.


어느 날 캐럴이라는 새로운 책임자가 그곳으로 발령을 받아왔는데 그녀는 아더에게 어떤 숨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녀는 아더에게 컴퓨터로 의사를 전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몇년 동안 의사전달하는 법을 가르키는 중에 캐럴은 아더가 매우 똑똑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너무나 기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의 부모인 울드 부부를 아더가 일하는 작업장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캐럴이 먼저 아더에게 '오늘 기분이 어떠냐'고 컴퓨터 자판으로 물었다.


그러자 아더의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힘들게 움직이며 컴퓨터의 키보드를 쳤습니다.


컴퓨터 모니터 상에 알파벳가 한 글자 한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아더가 한 문장을 만드는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그 모니터에 나타난 문장이었습니다.


29년간의 침묵 끝에 아더가 하고 싶은 한마디의 말이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그 한마디를 위해 29년의 침묵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한자 한자 두드리는 자판의 글을 읽고 있던 울드 부부는 더 이상 울음을 참고만 있을수 없었습니다.





“이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어 행복합니다”는 아더의 한마디 말만으로도 29년간 말 못할 고통과 눈물로 인내한 울드 부부는 기쁨과 보람으로 보상받기에 족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탕자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 온 것 만으로도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감격 그 자체이었음을 예수님의 비유에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눅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