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론이 그리 대단한 것이길래,

무슨 생각이 그리 대단한 것이길래,

나는 어떻고,너는 어떻고…



교회는 공동체인데

함께 나누고,교감하고,사랑하고

우리는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아니 더 나아가

이웃을,사회를,나라를 위해

살아나야가할 사람들인데..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너무나 작은 일에 집착한다.



진정 사랑을 할 때

내 사랑의 ‘스타일’이 사랑 그 자체보다 더 크고,

내 사랑의 대상이 헐벗고 굶주린 하나님 사랑의 대상보다 더 커진다.



우리는 사랑의 방정식을 곱하기로 풀려고 하고,

당신께서는 끊임없는 더하기로 푸신다.

그래서 하나만 영이 되어도

모든 등식이후의 결과는

제로다.



관심과 애정을 쏟았는데도,

자그마한 오해 하나로

우리들은 무너진 사랑탑 앞에서

그 오랜 시간동안 방정식 풀기에

쏟은 내 정열이 허무해서 운다,울고 또 운다.



이제부터 사랑을 더하기로 하는 것이 어떨까요.

곱하기보다 더 쉬운 더하기로요.

자그만 오해 하나가 생기면, 그것을 빼는 겁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사랑탑은 너무

풍성하고, 윤택합니다.



두려움은 몰라서도 생기고 알아서도 생깁니다.

몰라서 생기는 두려움은 알면 되는데, 안 후에 생기는 두려움은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심리학에서의 learned fear라는 것이 있지요.

타이태닉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하였을 때

어른들은 두려워서 죽어 갔지만,

두려움을 모르는 어린 꼬마 영혼들은 눈을 뜬 놈과 그 추위속에서도 눈을

평화롭게 감고 새록새록 잠드는 놈들이 모두 숨을 쉬고 있더랍니다.

두려움은 몰라서 생기는 것보다, 알아서 생기는 두려움이 더 무섭습니다.



몰라서 생기는 두려움을 풀어 가는 건 간단합니다.

알면 되고, 알려면 우리는 자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해야 합니다.

사이버 상의 오해는 가끔 이래서 생깁니다,



오해가 두려워

사이버 대화를 기피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겁니다.



얼굴을 비비고 모든 것을 안 후에 드는 두려움,

이것이 진실로 무서운 것이지요.

우리는 모든 것을 알기전에 이생을 하직한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요?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고,서로의 사랑 스타일에 관용을 베풉시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하나의 변



제글을 통해 누군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는 지적,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공개된 장소에 글을 올리기전

먼저 대화를 갖는 것이 좋지않았는가라는 지적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해선

사이버 대화가 아닌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