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루야! 이렇게 귀중한 간증원고를 수송지에 실리지 못한것 알 수 없네요. 다음번 수송지에 꼭 이글이 전 교인들께 읽힐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저는 지난번 구역식구일때 잠깐 몸이 불편하시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하신것 이제야 알게 됨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 되었다" 라고 하시면 인생 끝인데 우리 불쌍한 인간들은 그것을 모르고 지금 이 시간에도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무지 애를 쓰고 있지요. 누구나 커다란 시련이 와야 조금 느낄텐데 우리 신앙인들은 현재의 모습과 형편에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는 믿음의 형제들 되기 원합니다.











>>하품을 할 수 있는 은혜
>>                                                 권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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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2월 초였다.
>>“간에 종양이 있는 데요” 초음파로 내 옆구리를 검진하고 있던 여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  ‘그렇다면..... 간암? 내가 간암이라고?...’ 순간 내 가슴에서는 천둥소리가 났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 이었는데도 말이다. 예견된 일이라는 말은 20여 년 전쯤에 나는 위궤양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 전에는 별 말이 없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B형 간염보균자’ 라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되었고, 그 후 1년에 한 번이나 6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다니며 관리를 해 줘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를 듣고도 무심하게 그대로 방치해 온 터였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1-2년 전부터는 빨리 걷거나 조금 힘든 일을 할 때면 숨이 차오곤 했었는데 2년에 한번 주어지는 무료 건강 검진 기회마저 싹 무시하고 살아 왔으니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내 성미가 부메랑이 되어 내게 앙갚음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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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나는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은 욕이 될 수도 있으며(자녀의 유고 등을 보게 되는 등) 그렇기에 추해지기 전에 70정도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갔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내 지나온 삶이 그다지 평온하지 못했음인지 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뭐 그 까짓것! 나는 이 세상에 별 미련 없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이 끝나면 아무 때나  오라고 하실 때 하나님 앞에 기꺼이 갈 거야.’ 하며 마치 준비가 완전히 다 된 사람처럼 행동했고, 건방지게도 의사의 권고를 무시한 채 생각 없이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말이다. 70까지만 살면 딱 좋겠다던 할머니가, 그 70이 넘은지 2년이나 지났는데도 평소에 그렇게 큰소리를 치던 주제에, 초음파 실을 나와 복도 의자에 앉자마자 거짓말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염치도 없이 눈에서는 눈물이 후두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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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는 ‘암’이라는 진단이 나오면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의학이 많이 발달하여 치료할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 듯 했다. 그 덕에 나는 색전술 이라는 시술을 네 번 받았다. 작년에 세 번, 금년 1월에 한번. 색전술 이라는 것은 오른쪽 배와 다리 사이를 뚫어 거기에 있는 동맥을 통하여 아주 작은 빨대를 간의 암이 있는 곳까지 집어넣은 후 그 빨대를 통하여 항암제를 투여하는 기술을 말하는 것인데 개복을 하지 않는 관계로 수술이라고 하지 않고 시술이라고 한다고 했다. 입원기간도 2박 3일이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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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후가 문제였다. 내 경험으로는 시술을 받을 때마다 그 예후는 달라서, 어떤 때는 수월하게 넘어가고 어떤 때는 심한 통증이 계속될 때도 있으며 어떤 때는 메스꺼움이 한 달간 지속되는 때도 있었다. 두 번째 시술을 받고 난 후의 일이다. 처음과는 달리 수술실에서부터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지더니 입원실에서도 퇴원하고 집에 돌아 온 다음에도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그 강도는 숨을 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가 쿡쿡 결려서 숨을 들이쉬다가 깜짝 깜짝 놀라 “아! 아!” 하고 숨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날이 지남에 따라 통증이 줄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70년 동안 까맣게 모르고 살아왔던 것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하품을 하는 것이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차차 통증이 줄어가는데도, 옆구리를 움켜쥔 상태에서나마 기침이나 재채기는 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하품은 할 수가 없었다. 열흘이 지날 때까지도 말이다. 하품을 할 때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보다 몸을 부풀리거나 한번 들었다 놓는 폭이 더 큰 것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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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내며 차차 하품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평소에 아무 느낌도 갖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던, 또는 사람들 앞에서 잘못 하게 되면 실례라고만 생각해 왔던 하품을 한다는 일 조차도 아무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뿐만 아니라 트림이나 기침이나 재채기 또는 용변을 보는 일 등 우리가 평소에 하찮게 생각해 왔던 일들이 우리 몸을 지탱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또 그런 것들을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되었다. 평생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장애인들의 불편한 일상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1초도 멈출 수 없는 호흡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듯이 매 시, 매 분, 매 초 쉬시지 않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온 내 삶을 다시 한번 뒤 돌아 보게 되었으며, 일상의 평온에 감사할줄 모르고 불평만을 일삼아온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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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게나마 이러한 깨달음을 갖게 해준 암이라는 병을 주신 하나님께 나는 감사드린다. 치열하게 살아온 내 삶의 끝자락에서 이러한 병을 주신 것 또한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은 거의 끝나가고 있고, ‘이제 좀 평안히 있다가 나에게 오라’ 고 말씀 하시는 듯, 또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 세상을 떠날 때 감사하면서 눈을 감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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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젊었을 때 들은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기도는 하루에 한번이나 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매 시, 매 초 해야 된다’는 말씀이 있었다. 그 때의 내 생각은 ‘어떻게 기도를 매 초 할 수 있단 말인가?’ 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숨을 쉴 때마다 절로 “감사합니다.”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살아 있는 은혜, 숨을 쉴 수 있는 은혜, 기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은혜, 트림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은혜, 자기의 일상을 자기가 마음대로 뒷 갈무리 할 수 있는 은혜, 이 모든 은혜에 나는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내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매 시 매 분 매 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몸이 거의 정상 상태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하품’을 할 수 있는 은혜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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