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을 할 수 있는 은혜
                                                 권태평

  작년 2월 초였다.
“간에 종양이 있는 데요” 초음파로 내 옆구리를 검진하고 있던 여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간암? 내가 간암이라고?...’ 순간 내 가슴에서는 천둥소리가 났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 이었는데도 말이다. 예견된 일이라는 말은 20여 년 전쯤에 나는 위궤양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 전에는 별 말이 없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B형 간염보균자’ 라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되었고, 그 후 1년에 한 번이나 6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다니며 관리를 해 줘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를 듣고도 무심하게 그대로 방치해 온 터였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1-2년 전부터는 빨리 걷거나 조금 힘든 일을 할 때면 숨이 차오곤 했었는데 2년에 한번 주어지는 무료 건강 검진 기회마저 싹 무시하고 살아 왔으니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내 성미가 부메랑이 되어 내게 앙갚음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나는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은 욕이 될 수도 있으며(자녀의 유고 등을 보게 되는 등) 그렇기에 추해지기 전에 70정도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갔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내 지나온 삶이 그다지 평온하지 못했음인지 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뭐 그 까짓것! 나는 이 세상에 별 미련 없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이 끝나면 아무 때나  오라고 하실 때 하나님 앞에 기꺼이 갈 거야.’ 하며 마치 준비가 완전히 다 된 사람처럼 행동했고, 건방지게도 의사의 권고를 무시한 채 생각 없이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말이다. 70까지만 살면 딱 좋겠다던 할머니가, 그 70이 넘은지 2년이나 지났는데도 평소에 그렇게 큰소리를 치던 주제에, 초음파 실을 나와 복도 의자에 앉자마자 거짓말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염치도 없이 눈에서는 눈물이 후두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전에는 ‘암’이라는 진단이 나오면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의학이 많이 발달하여 치료할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 듯 했다. 그 덕에 나는 색전술 이라는 시술을 네 번 받았다. 작년에 세 번, 금년 1월에 한번. 색전술 이라는 것은 오른쪽 배와 다리 사이를 뚫어 거기에 있는 동맥을 통하여 아주 작은 빨대를 간의 암이 있는 곳까지 집어넣은 후 그 빨대를 통하여 항암제를 투여하는 기술을 말하는 것인데 개복을 하지 않는 관계로 수술이라고 하지 않고 시술이라고 한다고 했다. 입원기간도 2박 3일이면 되었다.
    
  그런데 그 후가 문제였다. 내 경험으로는 시술을 받을 때마다 그 예후는 달라서, 어떤 때는 수월하게 넘어가고 어떤 때는 심한 통증이 계속될 때도 있으며 어떤 때는 메스꺼움이 한 달간 지속되는 때도 있었다. 두 번째 시술을 받고 난 후의 일이다. 처음과는 달리 수술실에서부터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지더니 입원실에서도 퇴원하고 집에 돌아 온 다음에도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그 강도는 숨을 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가 쿡쿡 결려서 숨을 들이쉬다가 깜짝 깜짝 놀라 “아! 아!” 하고 숨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날이 지남에 따라 통증이 줄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70년 동안 까맣게 모르고 살아왔던 것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하품을 하는 것이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차차 통증이 줄어가는데도, 옆구리를 움켜쥔 상태에서나마 기침이나 재채기는 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하품은 할 수가 없었다. 열흘이 지날 때까지도 말이다. 하품을 할 때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보다 몸을 부풀리거나 한번 들었다 놓는 폭이 더 큰 것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내며 차차 하품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평소에 아무 느낌도 갖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던, 또는 사람들 앞에서 잘못 하게 되면 실례라고만 생각해 왔던 하품을 한다는 일 조차도 아무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뿐만 아니라 트림이나 기침이나 재채기 또는 용변을 보는 일 등 우리가 평소에 하찮게 생각해 왔던 일들이 우리 몸을 지탱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또 그런 것들을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되었다. 평생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장애인들의 불편한 일상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1초도 멈출 수 없는 호흡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듯이 매 시, 매 분, 매 초 쉬시지 않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온 내 삶을 다시 한번 뒤 돌아 보게 되었으며, 일상의 평온에 감사할줄 모르고 불평만을 일삼아온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다.

  늦게나마 이러한 깨달음을 갖게 해준 암이라는 병을 주신 하나님께 나는 감사드린다. 치열하게 살아온 내 삶의 끝자락에서 이러한 병을 주신 것 또한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은 거의 끝나가고 있고, ‘이제 좀 평안히 있다가 나에게 오라’ 고 말씀 하시는 듯, 또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 세상을 떠날 때 감사하면서 눈을 감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내가 젊었을 때 들은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기도는 하루에 한번이나 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매 시, 매 초 해야 된다’는 말씀이 있었다. 그 때의 내 생각은 ‘어떻게 기도를 매 초 할 수 있단 말인가?’ 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숨을 쉴 때마다 절로 “감사합니다.”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살아 있는 은혜, 숨을 쉴 수 있는 은혜, 기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은혜, 트림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은혜, 자기의 일상을 자기가 마음대로 뒷 갈무리 할 수 있는 은혜, 이 모든 은혜에 나는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내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매 시 매 분 매 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몸이 거의 정상 상태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하품’을 할 수 있는 은혜에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