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늙어야 고목이 된다.

그 자리에서 세월을 견디고 풍파를 겪으며

오랜 세월 변함없이 버텨내야

고목이 된다.

나무는 고목이 되야 거목이 된다.



저는 오래 전부터 고목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 왔습니다.

제 성이 고씨이기 때문에, 고바우, 고무신 등등의 이름도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고목이 제일 친근한 것 같기도 하고, 또 뜻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실제로 고목이라는 이름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기도 했구요(쑥스^^;;).



유재호님이 제가 쓴 글에 응답하신 글은 반갑게 읽었습니다. 유재호님을 좋아하고, 그 패기와 순수함을 좋아하기에, 평소에 자주 만날 기회가 없어 아쉽던 차에 이렇게 사이버 공간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거기서 그쳤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재호님이 두번째 올리신 글에 대해서는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응답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먼저 목사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 일반성도를 제압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요즘 일반 성도가 목사라는 이름 하나로 제압을 당할까, 그렇다면, 교회에서 일반성도에 의해 쫓겨나는 수많은 목사들은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사가 목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권위를 가지게 되는 건 아닐 겁니다. 물론 다른 직책보다는 교회 안에서 상대적으로 가지는 어드밴티지는 있겠지만, 그건 잠시동안 어떤 부분에서의 일일 뿐이지, 목사가 목사로 인정받는 것은 결국 그의 인격, 성품, 역할, 행동 등 그 사람의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일 겁니다.

유재호님도 법관이나 의사가 자기 분야에서 가지는 권위는 인정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권위를 가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목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을 전공하는 학위과정을 거쳐야 하고, 고시에 합격해야 하며, 현장에서 임상을 훈련해야 하고, 그 밖에도 수많은 훈련과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부 사이비 단체에서 아무에게나 목사 안수를 주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대부분의 건전한 교회에서는 아무나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병에 대해서는 의사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법에 대해서는 법관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듯이, 교회에서, 신앙과 신학에 대해서는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둘째, 고목이라는 상징조작으로 사이버상에서 권위를 행사하려고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목이라는 이름에서 권위를 느끼고 위압당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름에서 동네 어귀에 말없이 서 있는 늙은 나무, 그리고 그 그늘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고목의 상징조작이라면, 제가 그런 역할을 하지도 못하면서, 햇살을 막아서 그늘을 드리우는 고목을 빗대어 저를 표현하려고 했다는 비판은 받을 수 있겠지만, 목사의 권위로 교인들을 제압하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저는 교회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일반 사이트의 게시판에도 고목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리곤 합니다.



셋째, 유재호님은 목사의 기능과 직책에 대하여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계신 듯한데, 물론 유재호님이 지적한 대로 그런 면이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 목사라는 이름이, 또 여러 목사님들이 신뢰와 위로를 주는 이름이 되고 있기도 하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꼭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군부독재 시절에, 교인들 중에 부당하게 체포되거나 구속된 사람들이 있을 때, 목사가 경찰서를 찾아가, 나 아무개 목산데, 내 교인 내놔라 하고 호통을 치고 교인들을 데리고 나온 일도 많이 있었답니다.



넷째, 앞선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제사장이라는 이름이 일반성도도 모두 쓸 수 있는 이름이라는 부분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말씀드린 바 있기 때문에 다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유재호님은 마지막으로 제가 어떤 필명을 쓰든지 상관하지 않겠으니 유재호님이 어떤 이름을 사용하든지 상관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상당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제가 했던 이야기는 유재호님에게 어떤 이름을 써라 말아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신학적으로 제사장이라는 호칭이 문제가 있으니, 그 점은 지적해야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건 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당연히 말해야 할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해야 할 말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유재호님에게는 더욱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유재호님은 법학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재호님이 누군가에게 법률적인 일로 조언을 할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되리라고 봅니다. 그럴 때, 상대방이 나도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던 상관하지 않을테니, 당신도 내가 법을 지키건 말건 상관하지 말라고 반응한다면 어떨까요? 상대방이 듣건 안듣건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믿는 게 유재호님의 신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제 생각이 틀린 건 아니겠지요?

더군다나, 한 교회 안에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 상관하지 말자고 하는 건, 올바른 관계 형성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때로는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하고, 듣기 싫은 말도 듣는 관계가 되어야 교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고목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분석해 놓고서, 그 이름에 대해 상관하지 않겠으니 내 이름에 대해서도 상관하지 말라고 하는 건 좀 그렇네요. 할 말 다 해놓고 말하지 않겠다니요.



우리 사회에서 법관이 가지는 권위는 목사가 가지는 권위보다 한 단계 위라고 생각합니다. 법관은 권위와 함께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는 강제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목사의 권위가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목사라는 직책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목사는 자기 스스로는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일지 모릅니다. 목사의 권위가 목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물론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나올 때 비로소 목사의 권위는 힘을 가지게 되고 사람들이 목사의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 가운데 하나가, 한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하려는 것입니다. 목사의 부정적인 모습이 목사의 전체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길게 썼습니다.



한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유재호님과 저의 이 토론이 불필요하게 시비나 갈등으로 오해받지나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족으로 다는 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유재호님이나 저나 서로에게 상당한 신뢰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아, 이건 유재호님에게 안물어봤는데... 그래도 그냥 그렇게 믿기로 하지요. 괜찮지요?). 그리고 애정을 바탕으로 한 진지한 토론은 서로에게, 그리고 그 토론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오해는 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