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하시지요?
창립 7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사랑방은 자물쇠를 채웠는지 조용하군요.
<글 쓰기>도 없어졌고.
관리자께서는 이 글을 사랑방으로 옮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 곳은 5월 말, 이틀 연속으로 함박눈이 내려 헷갈리게 하더니 지금은 18도 정도의 쾌적한 날씨입니다.
단조로운 나날이라 적당한 긴장감을 갖기 위해서 교민 신문에 격주로 다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사랑방이 활기를 띠기 바라는 의미로 최근 신문에 실렸던 칼럼을 드리며 인사를 대신합니다.
주 안에서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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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단새

  <할단새>는 재미있는 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도 해발 3500 미터 이상의 산 속 깊은 골짜기에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새다. 히말라야 산을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몸을 움추리고 떨면서 내일은 둥지를 만들겠다고 밤새 다짐 하고는 다음날 태양이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날아다닌다고 한다. 다시 밤이 오면 바람이 거세고 추운, 높고 깊은 이곳을 떠나 내일은 산 아래 양지 바른 곳에 둥지를 짓겠다고 결심하고는 다음 날 해가 뜨면 또 잊어버리는 연속 망각 증상으로 평생을 둥지 없이 사는 새라고 한다.
  
  한국에도 전설의 새가 있다. 알다시피 봉황이다. 봉황은 고고하고 도도하여 백두산의 천지, 한라산의 백록담이든지 청와대 지붕에나 앉을 것 같은데 할단새는 부르기만 하면 손이나 어깨에 내려앉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정이 가는 새다. 무엇보다 하는 짓이 어쩌면 그렇게 나와 닮았는지 동료 의식과 함께 친근감을 더 갖게 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등의 교육 목적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새라고 생각되는데 히말라야에는 전설 속에서만 살고 있는지 몰라도 캐나다 땅에는 분명히 존재하며 살고 있다. 내가 바로 할단새다.

  나는 아직까지 악보를 읽지 못하고 피아노도 못 친다. 붓글씨도 못쓰고 수영도 못한다. 컴퓨터와 테니스는 초보 수준이고 바둑은 중급쯤 되나? 그 외에도 할 줄 모르거나 서툰 것들이 몇 개, 아니 많이 있어서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으며 때로는 망신 수준의 창피를 당한 일도 있다. 문제는, 그 때마다 언제까지는 어느 수준까지 올려놓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끝을 본 것이 거의 없다. 작심하고 3일을 버틴 것은 오히려 오래 끈 편인 것도 꽤나 있다.
  
  내 일상화된 망각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하나 있다. 8개월 과정의 직업 교육을 받을 때의 일이다. 정원이 24명 이었는데 출신국가 별로는 15개국이 되었다. 캐나다 출신이 아닌 이민자들에게 말 그대로 직업 교육을 시키는 학교였다. 매 주 금요일 오후에는 두 나라씩 짝을 지어 반 학생 모두가 먹을 민속 음식을 준비하고 각각 한 시간씩 자기 나라의 민속춤과 노래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직업교육 특히 어학연수 교실에는 어느 교실이나 한국 학생들이 판을 치는데 유별스럽게도 이 교실에는 한국인이 나 혼자뿐이니 책임과 역할을 나눌 수가 없었다. 내가 잘 생겨서는 물론 아니고 나이가 제일 많았기 때문인지 전원일치로 첫 순서를 내게 맡겼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연습한 아리랑과 노들강변을 춤을 추며 불렀다. 춤이라고는 몇 십 년 전에 '산토끼 토끼야'를 춘 것 밖에 없는 굳은 몸으로 춤을 추려니 헛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춤을 추는 내가 닭살이 돋을 정도였으니 보는 급우들은 얼마나 안쓰럽고 지루했을까.
  
  급우들이 한국의 춤사위를 모름으로 <거, 되게 못 추네.>가 아니라 <한국 춤은 싱겁도록 단순하구나.> 정도로 넘어 갔을 것이다. 그래도 큰 박수가 나온 것은 양념에 신경을 많이 쓴 불고기와 잡채에 최면이 걸렸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번에는 내가 보기에도 멋진 시간을 가지리라 다짐을 한 것은 물론이다.
  
  인터넷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아도 민속춤의 기초를 가르쳐 주는 곳을 찾지 못했고 <국악 한마당> TV 프로는 한가닥하는 고수들의 춤이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 온 순서를 또 다시 엉성하게 마치고는 염치불구하고 에드몬톤에 거주하시는 인간문화재 고예진 명창에게 달려가 사정하고 때를 쓰며 가르침을 받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날의 생각만으로 그치고 말았다. 네 번이나 맞은 순서 중 나머지 두 번은 부채춤과 탈춤을 중심으로 태권도와 한국 풍경을 몇 개의 테이프에서 뽑아, 편집하여 30분짜리 비디오를 보여 주는 것으로 대체했다.
  
  <내일이 내 차례인데 나는 아직 춤을 어떻게 추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 막막함과 황당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지난날의 모든 일을 다 기억하고, 마음먹은 모든 것을 다 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니 적당히 잊으며 사는 것은 정신 건강상으로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약한 의지력에 게으름까지 겹쳐 이제까지 생각만으로 그쳤던 것들을 되짚어 찾아내어 그 중에서 한두 가지는 끝을 볼 생각인데 내일 날이 밝으면 어떻게 할런지는 나 자신이 모르고 있다.
  
  원조 할단새가 <어쩌면 그런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느냐?>
감탄하면서 한 수 배우겠다고 날아올지도 모른다.(*)





* 교역자실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6-08 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