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전 우리 교회 시무장로로 있다가, 카나다로 떠난 이명종장로가 보내온 글이기에 전합니다.

    재미있는 지옥

  제목만으로도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짐작하셨을 것이다. 또 한국 얘기다. 컴퓨터로 한국 신문을 보고 있는데 볼수록 어수선하다. 김동길 교수가 말한 <나라꼴이 이게 뭡니까?>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특히 국회가 그렇다. 여당은 많은 의석을 확보하고도 자중지란에 빠져 쇠사슬에 묶인 거인이고 머리 깎인 삼손이 되어 있다.
친이와 친박은 있는데 친 국민파는 없다. 야당은 한 달 전에 세상 떠난 전직 대통령의 관을 아직도 붙잡고 곡을 하다가 누가 반정부 시위를 한다 하면 길을 열어 주는 터 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국회가 문을 연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 문을 가로 막고 노숙자가 된다. 그 많은 세비를 어디에 쓰고 길에 버려 졌는지 신문지라도 덮어 주어야겠다.
정책 대결이나 대안 없이 정부나 여당이 제안하면 무조건 반대다. 그냥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몽둥이와 망치까지 동원하여 법안 통과를 막는다.

여야가 하는 꼴이 동네 양아치들이 영역 싸움을 하는 것 같다. 앞으로 국회의원을 공천할 때는 태권도, 유도, 합기도나 무술 3단 이상에다가 성질까지 과격한 사람을 높은 순위에 올릴지 모른다.
법을 만들고 솔선하여 지켜야할 사람들이 솔선하여 법을 어기고 국회의원이 되려고 그렇게 애 쓰던 사람들이 툭하면 국회 문을 스스로 막는다. 거리에 나가는 일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인 줄로 아는 모양이다.
선거 때 나라와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단상에서 큰 절을 하던 후보들이다. 한 사람씩 보면 다 괜찮은데 뽑아서 모아 놓으면 잡탕밥도 아닌 짬밥이 되니 모를 일이다.

  처음 이 칼럼을 쓸 때 캐나다 얘기를 많이 하려 했다. 지금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야 할 곳이기에 삶에 도움이 될 자료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하퍼 수상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무슨 선거가 언제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어쩌다 TV에 비친 캐나다 양원 합동 회의의 모습은 영락없이 신학대학교 강의실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 캐나다 정치의 뒷면에도 사연이 많고 숨기고 싶은 비밀도 많겠지만 깊이 들어가기에는 언어 장벽에 걸리고 노력에 비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어 파헤칠 의욕이 나지 않는다.

원주민의 기쁨과 고뇌와 애환을 알지 못하며 마음과는 달리 여러 곳을 다니지 않아 문화적,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을 잘 알지 못하니 칼럼을 쓰기에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은 나만이 아는 비밀이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챌 가 겁난다. 캐나다에 특이한 미담이나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과 삶의 질은 좋으니 <재미없는 천국>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모양이다.
말하다 보니 캐나다에서는 강물도 한국 강물보다 조용히 흐르는 것 같다. 어쨌든 캐나다 공부를 많이 할 생각이다.

  나라에는 정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정치판이 워낙 요란하니 다른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조용한 다수가 있다. 생각이 없어서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다. 질서와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매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고 삶의 바른 길을 찾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사람들도 있다. 타 오르는 예술혼을 자기 분야에 쏟아 붓는 예술가도 있고 생산, 무역, 건설, 장사, 농업 등 맡은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들이 나라의 뿌리이고 기둥이며 그들이 있기에 나라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판이 조용하여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사는 세상이 되어서 조용한 다수의 얘기가 한반도에 가득 찼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얘기, 가슴 뭉클한 얘기가 넘쳐나는 <재미있는 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감동적인 얘기가 많아 눈물을 찔끔거리며 칼럼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