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돌과 두 여자"란 작품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두 여인이 한 노파를 찼아왔다. 그 중 한 여인은 죄가 많다고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다른 여인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하였다.노파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을 시켰다. 죄가 많다는 여인에게는 "크고 무거운 돌을 하나 가져오라"고 했으며, 죄가 없다는 여인에게는 "작은 돌을 많이 주워 오라"고 했다.



그들이 돌을 가져왔을 때 노파는 "이제 다시 그 돌을 제자리에 갔다 놓으라"고 했다. 큰 돌을 가져온 여인은 정확하게 돌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돌아왔다.

그러나 작은 돌을 많이 주워 온 여인은 그 돌을 어디서 주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서성거리다가 되돌아 왔다.



그때 노파는 말씀하기를 "죄가 있다고 한 자는 자기 양심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자유로운 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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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죄있다고 말하는 여자가 오히려 더 깨끗하지나않을까? 그녀는 지은죄가 얼마없으나 하나의 죄라도 자기가 어떤죄를 지었으며 정확히 말하지면 그러한 죄마져도 자기가 잘못했고 뉘우치고 있음을 시인한거고, 또한 죄없다고 말한 여자는 무수히 많은죄를 지었어도 그게 죄가 되는지도모른다면 사실은 죄가 되는지도 모를 일을 무수히 저질렸으면서도 죄가 되지않는걸로 알고 회개는 커녕 뻔뻔하게 죄없다고 말하는건 아닐까?



돌보다도 더 작은 죄를 수없이 많은 죄를 지었으면서도 그래서 기억조차도 할수도 없으면서 회개하기는 커녕 나는성결하고 죄없다 하며 구원 받았다하며 남들보고는 회개하라고 주그리스도를 믿으라하며 오늘도 우리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지는않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단테가 "신곡"에서 천국과 연옥과 지옥을 거인 아마테우스의 안내를 받아 여행했다한다. 그런데 연옥문에 이르니까 문앞에서 교황 메르난데스(갖은 비겁하고 간교한수단으로 교황이 된자)로부터 성직자들이 하나님과의 약속되로 천국에 가지 못하고 업드려 있어서 연옥문을 지나는 사람들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면서 고통스럽게 있는 모습을 보고 단테는 연옥까지마중나온 사자에게물었다.



"천국에 있어야할 저들이 어찌하여 저렇게 고통스럽게 연옥문 앞에서 업드려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사자가 하는말: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연옥을거치지 않고 천국에 갈수 있는 언약을해 주었지요. 하지만 세상에서 너무 많이 죄를 지어서 천국으로 올리지도 못하고 지옥으로도 보낼수가없어서 저렇게 연옥문 앞에 엎디어 있게 한거랍니다"

라고 했답니다.



혹시 우리도 저 죄없다고 말하는 여자처럼 실은 가장 많은 죄를 지었으면서도 하니님께서 구원해주었다는 언약만 믿고 자유함 속에서 저들 성직자들처럼 교만하고 교활함을 더하여 악날한 죄를 짓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니까 있어야할 세상의 기득권자들과 성직자들과 목회자들은 하나도 없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자 긍휼한자 등과같이 세상에서 자기도 어려우면서 보이지않는 곳에서 좋은 일을 많이한 선량한 백성들만있 있더라는 이야기가 그저 이야기만으로만 생각할수 없는건 또 무슨 이유에서 인지 저를다시돌아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