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일찍이 고린도전서와 빌립보서 등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고백했습니다만 2004년 새해를 맞으면서 저는 '개과천선'을 저 개인과 제 가정, 제가 섬기는 수송교회를 위한 한 해 시작의 사자성어로 채택하고 기도제목으로 기도해 나갈 것을 결심해 봅니다. 어제 아침 12월 31일 새벽제단을 쌓음으로서 저는 비록 매일 쌓지는 못했으나 2003년도에 40일씩 3번 120일간 새벽제단을 쌓도록 성령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사도바울은 당시에 대단한 신분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였고, 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었지요. 많은 왕들 앞에서도 당당히 간증하여 그의 총명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분은 그 당시 모든 지식을 통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고 나니까 그 이전까지 알았던 세상적인 지식이 너무 시시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개과천선 (改過遷善: 고칠 개 - 허물 과 - 옮길 천 - 착할 선)이란 잘못 들어선 길을 버리고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결의를 실천하여 마침내 이룩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진(晉)나라 혜제(惠帝) 때 양흠 지방에 주처(周處)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태수 벼슬을 한 주처의 아버지 주방(周紡)이 그의 나이 열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잃어 하루 종일 하릴없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지냈습니다. 또 남달리 몸이 강인하고 힘도 보통사람을 꺾을 정도여서 걸핏하면 남을 두들겨 패는 포악한 사람이 되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남산의 호랑이, 장교(長橋)의 교룡(蛟龍)과 더불어 삼해(三害)라는 평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처는 철이 들면서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지난 허물을 고쳐서 새사람이 되겠다(痛改前非 重新做人)는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 피하기만 하자,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기의 말을 믿어 주겠느냐며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남산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와 장교 밑에 사는 교룡을 죽인다면 자네의 말을 믿겠네!"라고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눈엣가시 같은 주처가 호랑이와 교룡에게 죽기를 바라고 이런 제안을 한 것입니다. 목숨을 건 사투 끝에 호랑이와 교룡을 죽이고 마을로 돌아왔으나 아무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실망한 그는 마을을 떠나 동오(東吳)에 가서 학자 육기(陸機)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육기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서 새사람이 된다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면 자네의 앞날은 무한하네!"라고 격려를 해주었고, 주처는 이에 용기를 얻어 이후 10여 년 동안 학문과 덕을 익혀 마침내 진실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공자는 '허물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허물이며, 허물을 알았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열등감이란 체력 용모 능력 등이 열등하므로 자신을 남보다 못한 무가치한 인간으로 낮추어 평가하는 감정으로 인간들은 대부분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열등감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 사로잡혀 성숙한 인격자로 되어가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고전 11:16) 사도 바울도 열등감이 있었고 모세는 말에 있어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전 1:27~29) 즉, 열등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며 그것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삶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며 그것이 우리를 위선자로 허세와 허영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열등감을 축복의 그릇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우리들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자라는 사실만으로 우월감을 또 여자라는 것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출신 배경에 관련된 것에 관해서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지닙니다. 양반제도의 역사적 경험으로 왕족과 양반계열의 성씨를 지닌 사람은 우월의식을 느끼고 있고 상인이나 서민 출신의 후손들은 잠재적으로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부모가 어떠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을 지니고 또는 고향이 어떠한 지역이며 출신 학교 등에 따라서 우열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출신도가 어디냐에 따라 우열의식을 느끼며 교인들의 경우는 자신이 속한 교회나 교단에 대해서 우월감 열등감을 느낍니다. 또,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직장에 다니면 우월감을 지니고 낮은 수입이나 직위면 열등감을 느낍니다. 또한 일의 종류나 보수에 따라서도 우열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적 또는 종교적 행위나 특성에 대해서도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낍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거나, 성경을 많이 읽거나, 헌금을 많이 하거나, 또는 교회 출석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것들로 우열의식을 느끼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얕잡아보며 또한 도덕적으로 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멸시하거나 천대합니다.



인간의 가장 사적이고 난해한 열등감은 개인이 스스로를 생각하기를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실제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자아이상(自我理想)과 현실의 괴리에서 생기는 열등감이겠지요. 이와 같이 열등감이나 우월감의 원천은 이외에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가진 것과 못 가진 것, 하는 것과 못하는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본 것과 못 본 것 등등 모든 것이 열등감과 우월감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경험 차별 비교의식은 커서 어른이 되어서도 우열의식으로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가치를 인간 존재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기지 않고 인간의 행위 소유 능력 배경 등에 삶의 가치를 부여하게 될 때 우리가 가는 길은 비인간화라는 비극적인 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완전한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것이 인간입니다. 문제는 보통의 불완전을 자신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이나 결함에 있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것을 용납하는 용기가 열등감의 극복을 위해 필요합니다. '죄'로 '고통'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덮을 수 없는 허물을 덮고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하는 용기가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경쟁이고 경쟁에서는 이겨야 한다." "한번의 실수가 죽음을 가져온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남보다 잘해야만 요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등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그릇된 규범이나 신념이 우리시대에 절대적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거나 개인의 체험을 통해서 이룩한 확신이나 신념을 포기할 때 인간 자신 속에 있는 정신적 재 판단과 독재와 횡포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지닌 사람들은 다같이 '나는 다른 중요한 사람들로부터 인정 (사랑 높임 칭찬 격려 등)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충동이나 신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이 무엇이라고 하건 자신의 신념이 어떠하건 이런 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추구하게 될 때 우열 감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절대자의 영원하신 모습 앞에 인간은 자랑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내 보이는 것이지요. 영원하신 절대자 앞에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기듯 우리들이 위대한 대 자연과 사랑의 하나님 품에 안겨있을 때 우월감도 열등감도 새로운 삶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



저는 며칠 전 만찬 후 아내와 함께 우연히 한 케이블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한 때 홍성현 목사님을 모시고 전도사 생활을 했던 최일도 목사의 인터뷰를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경부터 서울 청량리 일대에서 지금까지 무의탁 행려 자들에게 무료 급식과 무료 진료의 사역을 베풀며 사회 밑바닥의 소외된 이웃들의 친구가 되어 사랑을 베풀고 있는 시인 최일도 목사 부부의 사랑과 삶의 이야기들을 시청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그 불타는 사랑과 헌신의 이야기에서 멋진 설교보다도 더 큰 감동과 교훈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들을 검색해 보고 매우 놀라운 정보를 하나 획득했습니다. 사역 초기에 최 전도사가 청량리 홍등가에서 행려 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을 계속해 가자 모여든 가난한 행려 자들과 그 지역 사람들 사이에 최 전도사의 신분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그 청년이 카톨릭의 신부라는 설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떠들었다고 합니다. "아, 개신교에서 이런 일 하는 거 봤나? 이런 일은 성당에서나 하는 거라고. 그러니 저 사람은 신부일 거야."



저는 현재 수송교회의 교육관건축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면서 70주년기념사업회의 위원이기도 합니다. 수차의 회의를 거쳐 현재 70주년기념사업회에서는 인근 주민들과 젊은이를 위한 교육 시스템 개발에 열중하고 있습니다만 최일도 목사의 인터뷰를 시청하고 나서 그와는 별도로 수송교회가 주변의 도시 빈민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베풂이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해 초에 우연히 금요일 철야예배에 참석했다가 다음날 아침 바울성경반에 참여코자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인근 목욕탕을 찾았으나 가는 곳마다 만원사례였습니다. 할 수 없이 승용차 속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말았는데요, 후일 인근 목욕탕에 샤워할 일이 생겨서 목욕탕 주인에게 물어보니 게 중에는 물론 취객들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이 도심에서 밤늦게까지 식당 등의 영업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이라고 하더군요. 지하철도 끊어지고 택시를 타자니 돈이 너무 들어가니까 영업장 부근 목욕탕에서 수면을 해결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문득 교육관이 완성되면 현재 본당 지하 예배 공간과 준비실 공간 등을 온돌로 개조해서 야간에 개방하고 무료 수면실로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샤워 시설은 1층 화장실을 보완하면 될 터이니까요. 라면이나 우유 등 간단한 아침 식사까지 제공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터이고요. 물론 관리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가 당연히 있어야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꾸준히 반복누적 시키며 기도하는 양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69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수송교회가 오늘날 왜 이렇게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합니까? 부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69년전 이 교회를 설립할 당시의 그 훌륭하신 선배들의 뜨거운 신앙으로 다시 데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현재 수송교회는 그러한 밀알처럼 썩지 못하고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으니 수송교회 모든 성도들의 자아가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복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무리 용기와 지혜와 덕망이 출중한 목자라 해도 어떻게 일일이 수많은 양떼들을 움직일 수 있단 말입니까?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 직분 맡은 자들이 먼저 목자의 인도에 따라 믿는 자의 본을 보이고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양떼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04년도에는 부디 수송교회 장로 안수집사 권사들이 회개하고 통곡하며 개과천선하는 대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부디 속히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거꾸러뜨린다고 하셨습니다. 수송교회 교우님들 모두가 늘 주님 앞에 겸손히 살아가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강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자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더욱 주님의 능력이 믿는 자 마다 안에 거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또한 부디 수송교회 교우님들 모두가 2004년도에는 더욱 이 세상의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첫째 것을 좋아하시고 새 것을 좋아하시며 기름진 것을 좋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열배 백배 천배 만 배로 채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믿고 따라도 좋을 주의 종 홍성현 목사님과 함께 수송교회 창립 70주년 기념 교육관을 건축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함으로써 수송교회 모든 교우님들의 가정에 가난이 사라지고 질병이 치유되며 부채가 탕감되고 부진했던 사업이 재기하는 역사가 이루어 질 것을 믿습니다.



2004년 새해 첫날 아침에

황 부 용 집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