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가 최근 공개석상에서 "대통령을 잘못 뽑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지 채 6개월도 안됐고 대통령 선거를 치른지 불과 7개월만의 일이다. 우리가 함께 경험한 2002년 대통령 선거는 아무런 시비거리 없는 투명하고 공정한 민주 선거였다. 유신체제나 5공정권 때처럼 체육관선거가 아니었다. 이것을 부인한다는 사람은 아직 나타난 적이 없다. 그런 공정한 선거에서 패한 야당의 대표가 국민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말한 것이다. 민주정치 최고규범인 선거를 부정하는가?



그것은 정부나 여당의 정책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 아니라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발언에 가깝다는 점에서 문제다. 최 대표는 두어 달 전에도 노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역시 비판을 넘어선 선거 부정에 해당한다. 민주정치에서 최고의 규범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국민의 다수의사로 선택된 당선자가 정치적 정통성을 가지며 경쟁자들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민 선택권을 무시하는 듯한 한나라당 측의 의중을 드러낸 사람은 비단 최 대표 뿐이 아니었다. 청와대에 임명장을 받으러 간 한나라당 출신 방송위원도 일찍이 선거 부정성 발언을 했다.



이회창 후보의 언론특보였던 그는 "대통령이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뼈있는 농담을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경기장에서 패한 쪽이 승자에게 장외에서 '한풀이'를 한 격이다. 민주정치 규범을 가장 잘 보호해야 할 쪽은 여당보다는 오히려 야당이다. 정치적 게임의 룰이 잘 지켜지지 않고 변칙 행위가 빈발할 때 불리한 측은 집권세력보다는 야당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인사들의 그런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노 대통령을 옹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야당의 건전한 국정비판 역할과 운신 폭을 좁히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 가지고서야 대통령과 여야 대표와 국회의장이 만나는 국내정치 4자회담 같은 것을 어떻게 추진한단 말인가. 품위 있고 큰 정치를 하기 위해서도 성찰해야 한다. 큰 신문사의 정치부장과 편집국장을 지낸 최 대표가 선거의 의미와 민주정치 규범에 어두워서 그랬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민심의 호수에 돌멩이를 던져 놓고서 그 파문이 어떻게 번지는지를 관찰하는 것일지 모른다. 국민여론 시장에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새로운 여론상품을 하나 내놓은 셈이다. 작년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후보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런 여론이 확산되기를 고대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선거가 잘못됐고 다수 국민들이 실수했다는 여론을 불러 일으키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민주적 선거에 대한 포퓰리즘적 쿠데타에 다름 아니다. 나는 한나라당 쪽의 그런 시도가 불행한 자승자박이 될 위험성도 작지 않다고 본다. 예컨대 한나라당의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 야당의 역할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에 반해서 부당하게 대통령 자리를 탐하는 비민주적 행위로 전락할 수 있다.



대통령 자리는 오직 선거를 통해서 국민만이 결정지을 수 있다. 그 권능과 임기 역시 야당의 공세로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정치적 사안이라기보다는 거의 불변의 헌법사항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대통령 중심제가 의원 내각제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지금은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이 끝난 새 정부 초기다. 제아무리 정치공세를 펴 보아도 정권을 교체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닌 말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거리도 6개월만에 생길 리가 없다. 언론을 비롯해서 정부에 대한 비판 견제세력이 밀월기간을 두는 것도 그저 보아 준다기보다는 그런 이유에서다.



이제 야당이나 언론의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은 정책을 중심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 무분별한 정치 공세나 약점 캐기는 혼란만 부를 뿐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정통성과 민주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선거 부정에 다름 아니다. 야당의 간부회의에서 대통령을 '개구리'로 비하하는 시정잡배들의 저질 패러디나 농하는 것도 그런 예다.



노무현 정부 6개월은 혼돈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정치를 주도해야 할 여권이 무능한데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야당과 보수신문들이 정책 비판을 넘어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적 공격에 나선 데 상당한 원인이 있다. 그렇게 해서 잃는 것은 민주정치의 가치이고 얻는 것은 국정혼란 뿐이다.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민주정치의 기본 규범을 익히고 실천해야 할 때다.



[필자, 김재홍 님은 현재 경기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입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쉽게 평가하기 이전에 김영삼 - 김대중 대통령처럼 용두사미로 끝나지 말고 처음은 미약했으나 창대하게 업적을 마무리한 구약성서 속의 여러 위대한 인물들처럼 나머지 임기를 잘 마칠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옮긴이= 지난번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던 황부용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