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송현석군과 류기우 집사의 성가대에 관한 글을 읽고 답답해 했는데,

오늘 때 늦게 박동근 집사의 성가곡 선택에 대한 글을 읽고나서는, 사이버 공간

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기우가 아니었다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나는 성가대에서 연습하는 곡들이 너무 좋아서, 지휘자가 구해다 주신 성가곡

CD를 운전중에 자주 듣는다.

라디오 뉴스나 시사토론을 들으며 울적했던 나에게, 그 음악들은 세상에 이런

것도 있어, 이 음악을 듣고 공감을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이 세상은 희망이

있어 하고 나에게 용기를 준다.



박 집사의 글에 의하면, 성가대의 대부분의 곡은 10-20 대 들에 친숙한 곡이어

대부분이 40대 이상인 우리의 성가대에는 안 어울린다라는 뜻의 얘기가 있는데,

나는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전혀 이질감을 못느끼고 연습을 해왔다. 하지만,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성가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직접 상대방을 만나서 얘기할 때와, 모든 사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 글에 글을 올리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이글을 쓰면서, 상대방의 실명을 쓰는데 대해, 마음의 부담을 갖고있다. 하지만, 내가 그리하는 것은, 상대방도 자기의 글로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뜻에서 이다.



요즈음, 성혜랑씨가 쓴 {등나무 집}이라는 자서전을 읽고 있다. 나에게 공산주의의 가장 혐오스러운 면은 자아비판대에 대상자를 올려놓고, 상호 일대일로 비판하는 것이다. 인간상호간의 존중도 없고, 아무런 권위도 인정되지 아니한다. 나에게 공산주의의 두려움은 배고품보다는 인간의 위신의 상실이다.



작금의 언론 세무조사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 우리가 사이버공간에 무책임하게 올리는 글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정서에 위배된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언제 누군가가 목사님의 주일설교를 비판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릴지도 모르고, 한병호 집사가 주일날 설교중 조는 것을 보았다고 글을 올릴지 모르겠다.



무엇이 진정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무엇이 진정 우리가 잔직해야 될 것인지, 다함께 생각해 보자. 작은 목소리로, 웃으며, 상대방에게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서로와 인간관계가 없고, 관료주의가 팽배한 거대한 공동집단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