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유학 간 선교단체 동료가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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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가 완투승을 하였습니다. 정말 더운 여름날의 질긴 더위 끝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와도 같은 경기였습니다. 저는 어제 경제학과 선배들과의 식사가 있은 후 선배들과 한 선배집에 같이 모여서 차분히 텔레비젼 중계방송을 보았습니다.



9회말 애틀란타 팀을 4대1로 앞선 상황에서 애틀란타의 타자들을 봉쇄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카메라는 잠시 LA다저스 불펜의 코치를 보여 주었습니다. 박찬호는 이 마지막 이닝만 마무리를 잘 하면 완투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LA다저스로서는 박찬호를 마운드에 끝까지 그대로 두는 전략이 아주 위험했습니다. 그냥 구원투수를 불러서 승리를 굳히는 것이 더 편안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박찬호는 좋은 투구를 보여 주었지만, 던진 공이 110여개를 넘어섰기 때문에 잘못해서 안타를 얻어맞고 홈런을 맞는다면 승리를, 되찾을 기회없이 고스란히 넘겨주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박찬호보다도 그 코치에게 일차적인 비난이 쏟아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코치는 9회말에 박찬호를 그대로 등판시켰습니다. 이제 팀의 승리가 박찬호가 던지는 몇 개의 공에 달려 있게 되었습니다.



박찬호의 첫번째 공은 안정적인 스트라이크였습니다. 94마일의 엄청난 속도에 애매한 커브를 가진 아름다운 스트라이크였습니다. 카메라는 박찬호가 한번 공을 던질 때마다 불펜의 코치의 표정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타자가 친 땅볼을 내야수가 실책으로 놓치는 바람에 1루를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불펜의 코치가 땅바닥에 침을 한번 뱉었습니다. 두 세번째 타자를 삼진, 플라이로 잡아낸 후 - 제 기억이 맞다면 - 다음 타자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타자에 대해서도 박찬호는 침착하게 선구로 멋진 스트라이크를 꽂았습니다. 그렇지만, 제구력이 흔들려서 포볼로 타자를 보내야 했습니다. 이제 1루, 2루에 주자가 있게 된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투수를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코치와 포수 그리고 다른 선수들이 마운드로 몰려 왔습니다.



카메라가 박찬호와 코치가 이야기하는 장면을 클로즈업시킬 때 코치가 박찬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코치는 박찬호를 끝까지 등판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땀으로 번쩍이는 얼굴을 하고서 박찬호가 다시 타자를 노려보았습니다. 불펜의 코치는 계속 침을 땅에 뱉었습니다. 초조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팀의 모든 선수들, 특히 코치와 박찬호 선수는 이 경기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박찬호가 공을 잘 던졌지만, 볼을 기록할 때마다 코치는 침을 땅에 뱉으면서 손을 비볐습니다. 이제 2스트라이크, 3볼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박찬호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공을 힘껏 던졌습니다. 그러나 파울 볼. 고통스런 긴장의 시간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두번 째 공을 던졌습니다. 침착하게 뻗어들어간 공을 타자는 다시 파울볼로 만들었습니다. 홈런 한방이면 동점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을 고르는 박찬호의 눈빛과 얼굴은 초긴장 상태가 되었습니다. 또하나의 공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내야 땅볼로 아웃되어서 모든 긴장은 해소되고 시원한 승리의 안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LA다저스와 박찬호는 아주 귀한 1승을 또 거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엇이 박찬호를 침착하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끝까지 마운드 위에서 버틸 수 있게 하였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승리가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일까? 적지 않은 명예가 뒤따르기 때문일까? 본능적인 승부근성의 이끌림 때문일까? 이 어느것도 부분적인 설명밖에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보다 적절한 이유를 표현하는 말은 "프로근성"(professionalism)이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프로근성"은 현대 사회에서 특히 전문인들에게 요구되는 덕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로마의 권투경기나, 육상경기, 검투사경기를 익히 잘 알고 있던 바울도 그리스도인에게 현대인의 프로근성과 비슷한 자세를 요구한 것이 생각납니다. 예를 들어, 성경을 대강 뒤적이다보면 프로근성의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발견합니다.



(1) 프로는 자기 자신의 육신적 욕구를 절제할 줄 압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아니할 면류관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9:24-25)"



(2) 프로는 사적인 감정이나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딤후 2:4)"



(3) 프로는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이나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착각을 냉철하게 분별하고 겸손히 연습을 부단히 하여 준비되어 있습니다.(disciplined)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4) 프로는 유약한 자기 연민의 유혹에서 벗어나 책임감있게 장성한 자로서 다른 사람을 배려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로마서 15:1)"



(5) 프로는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흐트러짐없이 자신의 자세를 견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10:35)"



이제 일주일이 지나면 학기가 시작됩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이라 스스로를 자처하며 바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하는 제 자신이 박찬호선수의 프로근성보다도 훨씬 못한 유약함과 방향없는 무절제가 삶을 대충 대충 이끌어가도록 용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참 많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한번 믿었으면, 정말 프로답게 그분을 향하여 약속을 바라보며 근성있게 전진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분이 대장되시기 때문에 우리의 담대함은 확고한 근거가 있습니다. 학기를 시작하면서 제 자신을 추스릴 겸 해서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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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철님의 글입니다.

글의 출처는 kwanak.esf21.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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