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근현대 종교사의 현장/제주 이기풍 유적지


(조선일보 8/30)





## 개신교 첫 선교사 이기풍목사 12년간 `신앙의 씨앗' 뿌려 ##





개신교는 국내에서의 신앙 전파는 ‘전도’, 해외는 ‘선교’로 구분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첫번째 선교사는 어디서 활동한 누구일까? 한국 개신교 역사들이 최초의 선교사로 기록하는 인물은 뜻밖에도 1908년 제주도로 파견된 이기풍(李基豊:1868~1942) 목사이다. 이는 당시 제주도가 육지와는 언어나 풍습이 완전히 달라서 해외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평양 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자 190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목사 안수를 받은 7명 중 하나인 이기풍은 당시 개신교 신앙의 불모지였던 제주도의 선교 활동을 자원했다. 그가 제주도에서 활동한 기간은 1908년~1915년, 1927년~1932년 등 두 차례에 걸쳐 만 12년. 그는 이 기간 동안 제주도에 10개가 넘는 교회를 세웠고 신앙의 씨앗을 뿌렸다.





제주 시내에 있는 성내교회는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도에 처음 세운 교회이자 그의 제주 사역 중심지였던 곳이다. 1908년 1월 중순 평양을 출발한 이목사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4월 초 간신히 제주도에 도착했다. 그는 바닷가에서 한 해녀를 만나 처음 복음을 전했고 얼마 후 몇몇 사람들과 함께 교회를 열었다., 현재 삼도동의 성내교회(기장)는 원래 제주 훈련청이 있던 자리로 1910년 매입해 교회로 사용했다. 교회 입구에는 수령이 300년이 넘는다는 팽나무가 서 있고 그 앞에는 “이기풍 목사가 이 나무 밑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복음을 전했다”는 안내문이 눈에 띈다. 성내교회에는 또 이기풍 목사 기념비 등 그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성내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안교회(예장 통합)가 있다. 이곳에는 1984년 한국 개신교 100주년을 맞아 세워진 ‘이기풍 목사 선교 기념비’가 있다. 성내교회와 성안교회는 원래 하나였는데 1953년 장로교가 예장과 기장으로 분열하면서 갈라졌다.





이기풍 목사는 평양의 건달 출신으로 젊은 시절 장로회신학교 설립자인 마펫 선교사의 턱에 돌을 던져 흉터를 남겼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청일전쟁을 피해 이주한 원산에서 예수를 만나는 신앙 체험을 하고는 선교사를 돕는 일을 시작했다. 이기풍 목사가 당시 외지인에게 극도로 배타적이었던 제주도에서 목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거센 기질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이기풍 목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또 한 곳은 북제주군 조천읍 와흘리 야산에 자리잡은 이기풍 선교기념관이다. 예장 통합 총회가 1998년 5월 이기풍 목사의 선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웠으며 이 목사의 사진과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안태원 선교기념관장은 “광주에 있는 이기풍 목사 묘소의 이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