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싫증”        
저   자 : 김남준            
출판사 : 생명의 말씀사
값       :    ?

기자(記者)가 이 책의 저자인 김남준목사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전재(轉載)함으로 추천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 설교가 시작되면 슬슬 졸음이 밀려온다. 깨알같은 글씨로 설교를 메모하는 옆 사람을 보면 예전생각이 난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말이지.....’

그저 열정이 식은 것이라고, 남들도 다 이렇게 신앙생활 한다고 애써 위안한다. 어쩌면 이미 영혼에 하나님에 대한 싫증이 깊히 뿌리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자(記者)는 위 책의 저자인 김남준목사를 만났다.
그는 영혼의 싫증이 우리를 심각한 죄의 형태로 몰아 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싫증이라는 영혼의 현상과 마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목회자에게는 양떼가 거울입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했던 1993년에는 예배가 정말 뜨거웠습니다. 예배시간마다 성도들이 눈물을 너무 흘려 설교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였죠. 그런데 그들이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뜨거웠던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옛 생활로 돌아가더군요.
그러면서 왜 나쁜 일에 품은 열정은 그렇게 오래 가는데, 선한 일에 품었던 사랑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책 제목의 의미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 싫증나다’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 이 질문을 던지자 김목사는 A4용지에 부채꼴 모양을 그린 후, 왼쪽 끝에는 ‘ 사랑 ’ 오른쪽 끝에는 ‘ 미움 ’이라고 적었다. )

  제가 얘기하는 싫증은 사랑(愛)과 미움(惡) 사이의 중간 대역입니다.
힘의 균형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여기서는 왼쪽(사랑)으로도 갈 수 있고 오른쪽(미움)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에는 악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성향(性向)이 있습니다.

인생을 악하게 살기 위해서는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어요.
이것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타락(墮落)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싫증상태에서 우리는 어느쪽으로 쉽게 움직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이 바로 은혜입니다.

* 싫증자체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싫증이 힘의 균형 상태라면 자신이 싫증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아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요.

  어렵습니다. 인간의 지성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상태에서 가장 고성능을 발휘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 구실을 못하는 레이더처럼 되는 거죠.

대신 싫증이라는 단계가 있다는 정보를 정확하게 주면 그 정보를 토대로 자신의 상황을 돌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곳에서 기쁨을 느끼기 시작하면 싫증이라는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입니다. 지금 이상이 있다는 경고지요.

경고가 울린다고해서 지금 폭탄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폭탄이 곧 투하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싫증단계에서 “지금 위험한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쾅 넘어진 후에야 “굉장히 안 좋은 곳에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늦습니다.

* 싫증의 원인으로 온전함을 추구하지 않음, 은혜로부터 멀어짐, 마음을 지키지 않음을 제시(提示)하셨습니다.
싫증에 이르는 이유를 모두 개인의 영혼 안에서 찾으셨는데요, 설교자의 자질문제나, 교회 내에서 생긴 관계 문제 같은 외부 환경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보죠. 사랑하는 사람과 어디쯤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 사람이 없어요. 그 때 “흥, 이 사람 정말 싫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약속장소에 없어서 싫증 난게 아니라 싫증이 난 상태에서 약속장소에 나간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설교자가 하나님을 잘 보여주지 못한 것이 오늘 그 사람이 영혼에 싫증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원인이 아니라는 거죠.  그 사람 안에 하나님에 대한 애절함이 없기 때문에 싫증이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 영혼의 싫증에 빠지지 않으려는 그리스도인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

  친친애애(親親愛愛)라는 말이 있습니다. 친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선한 것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발견해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연애를 할 때도  그 사람 안에 있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더 깊이 사랑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지성을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최대로 집적한 것이 성경의 진리(眞理)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