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7일자 조선일보 박영석 기자의 보도/ 히틀러는 장악하려 들었고 처칠은 배분하려 했다. 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 앤드류 로버츠 지음 이은정 옮김, 휴먼&북스]



난세(亂世)는 영웅을 낳고, 영웅은 시대적 참상과 대중의 불안을 집단 최면의 도구로 남용하기도 한다. 대중의 영혼마저 움직일 인성의 리더십, 영적(靈的)인 추종을 부를 도덕적 지도력은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 악랄한 저항에 부딪힐 때마다 길을 잃고 헤매는 민주주의를 수호·재건할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가? 현대사를 전공한 전기작가 겸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윈스턴 처칠(1874~1965),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영국의 명운을 걸고 맞섰던 두 지도자를 비교하며 해법을 꺼내 보인다.



책(원제: Hitler & Churchill Secrets of Leadership)은 세계의 권력지형과 역사를 바꾼 1939~45년의 위중한 시기를 위주로, 둘의 품성·용인술·화술과 일화들을 아울러 ‘권위주의적 리더십’(히틀러)과 ‘영감을 주는 리더십’(처칠)으로 결과한 과정을 추적한다.



1923년 뮌헨 ‘맥주집 반란사건’ 주모자로 1년여간 독방에 수감됐던 히틀러, 제1차 대전 때 해군 작전 실패의 책임자이자 1930년대 대부분을 야인으로 지낸 처칠. 정치적 사망선고를 딛고 일어선 초인적 강골이란 측면에서 둘은 닮은 꼴이다. 국민이 동일시할 만한 비전과 공동 목표를 제시한 점도 공통점이다.



“베르사이유 조약은, 침략국은 경제적으로도 붕괴시켜야 하고 승전국은 잘 살게 해야 한다는 가당찮은 논리로 일관돼 있습니다.” “오늘날 독일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국가들에게 둘러싸여 미래가 암울한 것은 운명이 정한 일이 아닙니다.”



히틀러는 베르사이유 조약(1차 대전 후 연합국과 독일 간의 강화조약)의 부당성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고, 유대인을 공적(公敵)으로 삼는 사악한 정치 전략과 군중 연설로 호응을 얻었다. 히틀러는 가장된 ‘보통 사람’ 이미지로 질투와 불만을 자극하는 혐오·부정·반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웅변술을 구사했고, 콧수염과 무뚝뚝한 태도마저도 철저히 계산해 스스로 카리스마를 만들어갔다고 저자는 평한다.



“내가 드릴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밖에 없습니다.” 1940년 총리가 된 직후 의회 연설에서처럼, 처칠은 청중의 머리보다 가슴을 향해 직설적으로 호소했다. “죽음과 슬픔이 삶의 동반자가 될 것이며, 불굴의 용기만이 우리의 유일한 방패가 될 것입니다.” 처칠은 히틀러처럼 손수 연설문을 작성했지만, 대면 접촉이 아닌 라디오방송·의회 등을 통해 설득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전란의 폐허가 된 거리에서 눈물을 떨구거나, 다우닝가(街) 10번지부터 의회까지 대중 앞을 자연스럽게 활보하는 친밀감이 밴 그의 행동은 대중과 소통했다.



“히틀러가 지옥을 범한다면 악마한테라도 아양을 떨겠다”는,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 낸 동맹전략과 승부욕도 승인(勝因)이 됐다. 처칠은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기도 전에 이를 확정된 사실인 양 ‘선의의 거짓말’을 남발해 국민들을 다독였다.



처칠의 위대함은 자신에게 거역할 줄 아는 부하를 기용해 그들의 조언을 따랐던 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신중하고 열정적인 앨런브룩 참모총장을 중용, 생산적 긴장관계를 통해 자신의 단점을 메웠다.



히틀러 총통은 알콜중독자이자 만취 상태에서 총기 오발 사건을 일으켰던 측근을 경호대장으로 기용했던 예에서 보듯, 처신에 문제가 있더라도 자신의 충복(忠僕)에겐 관대했다. 그는 선전장관 괴벨스, 외무장관 리벤트로프, 친위대장 히믈러 등으로부터 개별 보고를 받는 일을 즐겼고, 적대적 파벌을 이룬 부하들 간의 경쟁·적개심을 부추긴 뒤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 권위를 다졌다. 저자는 히틀러의 사람 관리를 경쟁과 도태에 입각한 신(新)다윈주의로 표현한다.



히틀러는 장악하려 들었고, 처칠은 배분하려 했다. 히틀러는 부하에게 잔정도 많았고 2차 대전 개전 초기엔 현장 지휘관에게 많은 부분을 맡기는 임무형 전술로 성공했으나 전황이 불리해지자 지휘권을 자주 간섭했다. 처칠은 참견도 잦고 무례한 말을 쉽게 내뱉었지만 자주 돌아 다니면서 공식·비공식적으로 부하들과 어울리는 현대식 경영기법(MBWA·Management By Walking Around)을 실행했다.



단 한번 만난 적 없는 두 숙적의 경쟁의식은 남달랐다. 처칠은 히틀러를 ‘피와 약탈에 굶주린 탐욕스러운 괴수’로, 히틀러는 처칠을 ‘유태인 꼭두각시’로 방송과 공석에서 맹비난했다. 히틀러는 자살 직전 결혼한 정부(情婦) 에바 브라운에게조차 “나의 총통 각하”로 불렸던 반면, 처칠은 아내로부터 “동료들 대부분이 괴팍한 당신을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평등한 부부관계를 지속했다.



성숙한 민주주의도 특정 리더십을 맹목적으로 찬양할 위험을 갖고 있다. 특히 현실 미디어 정치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유력한 두 지도자를 이분법적으로 단순화시키고, 우상화와 배척의 양단(兩端)으로 치닫게 하기도 한다. 감성이 아닌 감정의 화법, 진솔함이 아닌 진노(嗔怒)의 수사로 가득한 현실에서, 대척점에 선 두 종류의 리더십은 50년 세월을 넘어 지도자와 대중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