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 국회도서관장의 기행문에서 인류최초 도서관만을 발췌하여 옮겨본다.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여행은 언제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인류 최초의 도서관으로 공인된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그 이름만으로도 역사의 무게와 함께 신비감으로 다가왔다. 지난 8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도서관정보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나선 김에 도서관의 성지순례를 한 셈이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서북쪽으로 사막을 뚫고 3시간 가까이 자동차를 달리자 지중해의 검푸른 바다가 눈앞에서 넘실넘실 환영인사를 한다. 사막 끝의 바다는 색다른 느낌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끝자락, 유럽 대륙의 건너편, 이곳이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여러 도시 중 하나. 고대 최대의 항구였던 이곳 지중해변에 알렉산더의 후계자인 프톨레마이우스 1세가 BC 3세기에 세운 도서관이 바로 공인 세계 최초의 도서관,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이다.

여러 차례 파괴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도서관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의 건물은 1990년대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호소하여 유네스코가 나서고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재건한 것이다.지중해의 떠오르는 태양과 거대한 해시계를 형상화한 외관부터가 예사로운 건물이 아님을 한눈에 알게 한다. 무조건 압도당하고 무조건 감탄하고도 전혀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첫인상을 준다.

고대 최고의 도서관은 도서 수집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항구에 정박하는 선박뿐 아니라 심지어 지중해를 항해하는 선박을 검색하여 서적을 압수하여 도서관으로 보냈다. 대신 원주인에게는 사본을 만들어 주었다고 전해진다. 일종의 ‘지적 강도’라고나 할까.

바다 건너 그리스 등에 귀중본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거액의 예치금을 맡기고 빌린 후 예치금을 포기하고 귀중본을 차지하는 등 도서수집에 열을 올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70만 장서를 보유했다고 한다.전성기에는 지중해 일대 당대의 최고 작가와 학자들을 모셔와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서 연구에 전념케 하는 등 연구센터 역할을 했다.

로마와 아테네가 인문학 중심인 데 반해 이곳은 천문학·지리학·물리학·화학 등 자연과학도 중시했다. 저 유명한 아르키메데스, 에라토스테네스(지구둘레 측정), 유클리트(기하학) 등이 이곳 출신이라면 실감이 날 것이다. 이 도서관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의 지적인 수도로 불리었다. 왕의 사부 등 최고의 지성이 관장을 맡았는데 쇠퇴기에는 왕실 경호대장이 관장을 겸직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도서관은 세계 최초라는 것 말고도 도서관 파괴에 관한 매우 중대한 상징성을 지닌다. 정복전쟁이 빈번했던 옛날 정복자들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도서관을 불태우는 일이었다. 무력으로 영토를 정복하더라도 그 지역의 문화를 말살하고 주민들의 정신을 지배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정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도서관은 정치·군사적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정복자인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5차례나 파괴당하는 수난을 당했다. 어떤 때는 책을 불태워 6개월 동안 대중목욕탕의 연료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거꾸로 보면 도서관이야말로 그 민족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지켜주는 견고한 성곽이라는 말이 된다.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수차례 파괴당하는 자기희생(?)이라는 위대한 역설을 통하여 도서관의 중요성을 웅변해주는 셈이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곳의 마지막 왕인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안토니우스와 결혼할 때 지상 최고의 결혼선물을 받았다. 안토니우스는 이 절세미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로마의 정복지인 시리아 지역에 있던 페르가몬도서관의 20만 장서를 통째로 배에 싣고 가서 바쳤다. 선물이라면, 특히 그것이 특이한 종류의 것이라면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책을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의 왕국이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짐작케 한다. 알렉산드리아도서관 재건 움직임은 1974년에 싹이 트기 시작하여 1990년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부부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적극 추진함으로써 결실을 보았다. 유네스코 회의에서 18개국 국가원수와 고위인사들이 서명한 국제선언이 채택되어 각국 정부와 민간기구, 학자, 작가 등 전세계 지성계에 도서관 신축을 돕도록 촉구했다.

그 결과 이라크, 아랍에미리트연합,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이 2억3000만달러에 이르는 건축비 대부분을 부담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노르웨이, 일본, 중국 등이 물자를 제공하는 등 많은 나라가 참여했다. 그 결과 2002년 10월 16일 옛 도서관이 있던 자리 부근 지중해변에서 국제적 축복 속에 재탄생한 것이 오늘의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이다.

건물은 국제공모에서 노르웨이 건축사무소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전체적으로 거대한 원형의 모습인데 ‘지중해상의 영원한 일출’을 상징하기 위해 건물 일부가 바다 수면 아래 잠겨 있도록 했다. 겉은 11층 건물인데 사무 공간과 서고 등을 제외하고 열람 공간은 모든 층이 시원스럽게 터져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다.

메인 열람실의 천장은 32m 높이에 직경 160m의 유리 천장이 지중해를 향해 기울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거대한 해시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해가 지면 환상적인 조명이 눈길을 사로잡는다.내부에는 6개의 전문 도서관과 3개의 박물관, 천문관, 영화관, 7개의 학문 연구센터, 필사본 저장소, 4개의 아트갤러리,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컨퍼런스센터가 있으며 9개의 상설전시장이 있다.

건물 밖의 거대한 화강암 벽면에는 120여종의 세계 각국 문자가 조각되어 최초의 도서관으로서의 위엄과 글로벌한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다. 한글은 ‘월’과 ‘세’ 등 여섯 글자가 흩어져 새겨져 있다. 이 화강암은 피라미드와 동일한 종류의 암석을 사용하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애스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지하에 위치한 박물관은 이집트의 찬란한 고대 문화를 보여주는 수많은 보물과 각종 진기한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별구역은 VIP에게만 공개된다.

사진촬영은 금지. 세련된 패션의 히잡으로 얼굴 테두리를 감싼, 아니 얼굴을 치장한 아담한 젊은 여인이 안내를 해주었다. 다소 컴컴한 조명 속에서 보통 한국 여성의 두 배는 되고 남을 크기의 둥실한 두 눈이 샛별처럼 반짝이며 고대 유물과 함께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이집트식의 기름기 빠진 영어 발음과 저음, 그리고 웃지 않는 얼굴, 그렇다고 친절하지 않은 것도 아닌 절묘한 표정이 야릇한 매력을 더해 주었다.

이집트 정부는 이 도서관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하여 세계은행 부총재 출신인 이스마일 세라젤딘을 관장에 임명하고 대통령의 부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사장인 무바라크 여사는 이 도서관의 역할을 ‘세계에 대한 이집트의 창, 이집트에 대한 세계의 창, 디지털 시대를 위한 도서관, 학문과 대화의 중심지’ 등 4가지로 규정했다.

현재 유네스코와 공동관리하고 있는데 한국은 국제교류재단에서 파견된 사서 한 명이 일하고 있다. 많은 관광객으로 늘 붐비는 속에서 아직 우리나라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통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와 미라만 생각하는데 파피루스와 상형문자, 그리고 상형문자가 새겨진 유명한 로제타석이 발견(대영박물관 소장)된 나라답게 위대한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 현대건물로 재건축된 알렉산드리아도서관 모습을 첨부파일로 전한다.
사진을 설명하면 ▲ 1 알렉산드리아도서관 내부 모습. 2 알렉산드리아도서관. 유리천장이 지중해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3 알렉산드리아도서관 앞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