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있는 아침] 아카시아꽃 필 무렵



<최윤희·카피라이터〉



해마다 이맘때, 아카시아 꽃이 만발할 무렵이면 그 ‘향기의 통로’를 통해 내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해인 엄마와 해인 아빠. 그들은 수도원에서 살아가던 수녀와 수사였다. 해인 엄마는 영화 ‘시스터 액트’에 나오는 말괄량이 수녀들을 훨씬 더 능가하는 재기발랄한 수녀였다. ‘명랑 소녀’ 원조격이라고나 할까. 명랑 소녀가 아닌 ‘명랑 수녀’였던 셈이다. 그런 성격이니 수도원이 조용할 리 없었다.





약간 고급 언어를 사용해서 표현한다면 그녀는 ‘추방’되었고 내 평소 수준인 저급 언어 사용이 허락된다면 그녀는 ‘쫓겨’난 것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엄격한 수녀원장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카타리나 수녀. 당신은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수녀원에는 부적절한 사람이에요. 세상 사람들하고 함께 살아야 더 행복하지 않겠어요. 수도원 밖으로 나가서 그들과 함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게 어떨까요”





몸짓과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그 상황을 재연하는 해인 엄마를 보면서 우리는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의 운명처럼 불가사의한 것이 또 있을까. 빼빼로처럼 깡마른 체격, 까맣게 형형한 두 눈. 그 눈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시집 서너권쯤은 읽어낸 것처럼 영혼을 맑게 행궈주는 수사. 그 수사와 결혼하게 될 줄이야. 눈이 너무 깊어서 빠져버린 것 같다고, 익사하느니 차라리 결혼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그 시절을 증언한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두 사람의 결혼. 그 당시 그것은 대형 사건이었다. 그들을 알게 된 것도 13년이 넘었다. 해마다 아카시아 꽃이 피면 해인 아빠는 꿀을 딴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 하나를 키우며 그들은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하고 산다. 그것은 꿀따기와 꽃키우기. 꿀은 해인 아빠가 따고 꽃은 해인 엄마가 키운다. 해인 아빠는 아카시아 꽃을 찾아 해마다 이 무렵이면 전국을 유랑한다. 그렇게 애써 딴 꿀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해마다 내게 보내준다. 그것도 꼭 3병씩. 왜 한병이 아니고 3병이냐고 내가 물으면 그 대답이 걸작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니까 한병이면 되구요. 애들은 한병씩 따로 주세요. 그래야 싸우지 않고 평화롭겠죠”





얼마 전에 안부 전화를 했더니 해인 엄마가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7일 동안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니 제법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엄살쟁이인 내가 화들짝 놀라 “어머 어떡해요, 많이 다쳤어요”라고 비명부터 질렀더니 대답 대신 해인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깔깔~~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전화기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아픈데 웃을 정신 있냐니까 그녀가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웃다마다요. 이제까지 너무도 중요한 걸 모르고 살았더라구요. 건강하기 짝이 없던 내 육체가 그렇게 소중한지 처음 알았다니까요”





그동안 고분고분 머슴처럼 일만 하던 육체가 난데없이 사보타주를 하니 할 일은 많고 어쩌나 했는데 욱신욱신 통증을 느낄 때마다 이상하게 고통보다는 ‘어머, 내가 살아있네’ 하면서 오히려 생명의 소중함을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명을 질러야 할 만큼 아플 땐 오히려 깔깔 웃는다 했다. 역시 수녀 출신이라 세속의 나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약간 겸손해지며 전화를 끊으려니 해인 엄마가 ‘잠깐만’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잖아도 오늘 낼 찾아가려고 했어요. 텃밭에서 뽑은 상추, 쑥갓 좀 가져다 드리려구요. 흙에서 금방 뽑아냈으니 아직 팔팔 살아 있어요”





그들은 아카시아 꿀만이 아니라 완전 100% 순수 무공해 야채를 가꿔 수시로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그들에게 갔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장흥 비닐하우스. 내가 사는 일산에서 약 20분쯤 거리다. 그린벨트 지역이라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 그 비닐하우스를 에워싸고 있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 나는 작은 기찻길도 건너야 한다. 기찻길을 건널 때마다 어디선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기차를 느낀다. 기차는 굵고 낮은 바리톤으로 내게 속삭인다.





“칙칙폭폭~~최윤희, 잘 살고 있니. 칙칙폭폭~~최윤희, 너무 헉헉대는 건 아니니”





그 소리가 끝날쯤이면 해인 엄마가 비닐하우스 창문을 열고 나타난다. 깔깔 웃는 그녀가 아카시아 꽃보다 훨씬 더 예쁘다.(옮긴이:류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