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이어령 외 21명/ 생각의 나무]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동지애(Fraternite)’에서 2050년경 세계는 지역별로 몇 개의 초국가 형태로 분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동북아의 3국인 한국 중국 일본이 유럽연합(EU) 형태의 초국가를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책임편집을 맡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한중일이 EU처럼 연합될 경우 그것을 상징하는 꽃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 매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EU를 하나로 묶는 것이 기독교이듯 동북아 3국은 매화라는 문화적 기반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매화 문화권’이다.



이 책은 서양에는 없는 꽃, 동북아 3국이 공유해온 매화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노래되고 그려지고 읽혀왔는가를 비교 분석하고 있다. 매화를 통해 ‘3국을 관통하는 문화적 유전자를 해독’하는 시도는 3국이 묶여야 하는 당위를 찾는 일이자 서구 문화권과의 구별 짓기인 셈이다. 매화는 유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3국 모두에서 절개와 금욕을 상징한다. 중국인들이 매화를 ‘발견’한 것은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221∼589)시대로 순환론적 세계관이 확립되기 시작한 때이다. 중국인들은 계절의 순환을 음양(陰陽)의 이치로 해석했는데 그것은 양(陽)을 위주로 한 존양(尊陽)의 논리였고, 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봄을 앞질러 핌으로써 봄을 선도하는 매화가 귀히 여겨진 것이다. 이후 매화는 ‘양기의 전령사’이자 ‘절조가 빼어난 사람’으로 유교적 인품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다.



유교문화권인 한국에서도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품격을 더 따졌다. 화용(花容)보다는 화품(花品)으로 우열을 가렸는데 세종 때 시서화(詩書畵)의 삼절(三絶)로 불리던 강희안은 꽃을 정일품에서 정구품으로 나누고 그 가운데 매화 국화 연꽃을 일품으로 꼽았다.



한국에서 매화를 아끼기로는 퇴계 이황을 따를 사람이 없을 듯싶다. 퇴계는 매화가 피는 겨울 섣달 초순에 눈을 감으며 “매화에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퇴계는 분매(盆梅)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으로 깍듯이 부르고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퇴계는 이(理)를 ‘깨끗하디 깨끗하고 맑디 맑은’ 세계로 묘사했고, ‘청진(淸眞)’한 매화를 소재로 한 시를 통해 이(理)의 세계를 그렸다.



중국과 신라문화의 수입국이던 일본에서 매화가 유행한 것은 지금의 ‘한류(韓流)’나 ‘한류(漢流)’에 비견되는 이국적 취향이었다. 8세기 말경 완성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는 5000여수의 노래가 실려 있는데 이 중 매화를 읊은 것이 120여수나 된다. 일본의 상징인 벚꽃은 40여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문사(文士)들의 꽃, 매화는 11세기경 무사(武士)들의 벚꽃에 영광의 자리를 내준다. 매화와 벚꽃은 문과 무, 외풍(外風)과 국풍을 상징한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는 학문, 봄의 한가운데 피어나는 벚꽃은 향락을 의미한다. 매화는 송이송이 뜯어 봐야 하지만 벚꽃은 군집미를 감상한다. 벚꽃의 집단성과 화사함, 미련 없이 흩어져 지는 죽음의 미학을 이념화한 것이 무사도와 자살의 미학이고, 그것을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이용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가미카제 특공대이다.



중국에서 매화에 대칭되는 꽃은 모란이다. 매화와 모란은 정신과 물질, 성(聖)과 속(俗), 은둔과 입신의 이항성을 나타낸다. 유교의 텃밭 중국에서도 매화는 화려하고 향이 빼어난 모란의 위세를 꺾지 못한다. 매화는 ‘화형(花兄)’ ‘화괴(花魁)’라고 불렸고 모란은 화왕(花王)이란 칭호를 얻었다. 한국에서 매화에 맞서는 것은 아무데서나 꺾어 꽂아도 살아나는 ‘천한’ 개나리다. 반(反) 엘리트적인 한국의 민중문화는 사대부들이 완상한 매화와 모란을 싸잡아 매도한다. ‘…절개면 다냐 매화야 부귀(富貴)면 다냐 목단아 이 꽃 저 꽃 다 버리고 개나리꽃 네로구나’. 이 책은 3국에서 상징과 이미지에 정통한 학자들이 공동 집필하는 ‘한중일 문화코드 읽기’ 기획의 첫 번째 순서. ‘매화’처럼 문화 관련 상징과 이미지들을 표제어 방식으로 선정해 단행본으로 계속 발간할 계획이다.



(이진영/ 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