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일자 동아일보 조이영 기자의 보도]



‘만다라’의 소설가 김성동(金聖東·56)씨가 천자문(千字文) 해설서 ‘김성동 천자문’(청년사)을 펴냈다. 작가가 직접 붓을 들어 한자 1000자를 쓰고 여덟 자씩 나눠 문구를 해석했다. 김씨는 충남 보령의 전통적 유가(儒家)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한학 수업을 받으며 자랐다. 남로당에서 활동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자리에 할아버지가 있었다. “책을 집필하며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먹 갈고 글 쓰던 옛날을 생각했습니다. 놋재떨이를 두들기던 할아버지의 장죽(長竹) 소리도 새삼 귓전을 맴돌았고요. 당시에는 답답하고 고리타분했었는데,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게 되면서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들더군요.” 천자문에는 중국의 역사를 비롯해 천문 학문 처세 지혜와 정치·행정가의 올바른 몸가짐, 제왕의 도(道), 바람직한 인간형인 군자의 길과 식구나 이웃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까지 두루 담겨 있다는 것.



그는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지거나 소설을 쓰다 막힐 때면 책롱(冊籠)에서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한적(漢籍)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본다고 했다. “‘삶의 형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구나, 내 고민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돼요.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오늘의 문제가 생생하게 보이는 겁니다.” 지금도 김씨의 귓가에는 할아버지의 이 말씀이 맴돈다고 했다. “문즉인(文則人)이요 문긔스심(문기서심·文氣書心)이라…. 글은 곧 사람이라. 글은 곧 긔(기)요 글씨는 곧 마음이니, 다다 그 긔를 똑고르게 모으구 그 마음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넌 사람만이 올바르게 글을 짓구 또 글씨를 쓸 수 있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