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6일자 인터넷신문 뉴스앤뉴스에서 전재]



한국 중-고등학생들, 심지어 대학생들에게도, 가장 자신 없는 분야는 한글 단어의 漢文표기, 또는 漢文단어의 한글표기이다. 어느 TV방송의 고등학생 퀴즈 프로에서 '자유'를 '自由'로 제대로 표기할 줄 아는 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이쯤되면 漢字문화권에 속해있다는 우리 젊은이들은 거의 文盲(문맹)상태라고 할 수 있다.



대학생들도 나을 것이 없다. 서울대학의 학생이 기말고사 漢字시험에서 한자단어에 독음을 다는 문항 중 '哲學(철학)'을 읽을 줄 몰랐다. 이 학생은 血液(혈액)도 歡迎(환영)도 製品(제품)도 한글로 표기하지 못했다. 옛날 같으면 중학 1,2학년이면 깨쳤을 漢字단어들이다.



이 학생은 20개 한문단어 중 卒業(졸업)과 責任(책임)을 한글로 표기하는데 겨우 성공했지만 거꾸로 '졸업'과 '책임'을 漢字로 표기해 보라면 정답을 그려내는데 진땀을 뺐을 것이다. 이런 현실은 이 학생에 국한된 일이 아니고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무지이기 때문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 전용론자들은 '자유'면 됐지 굳이 '自由'로 적어야하느냐, '졸업'-'책임'의 漢字표기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하고 따질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 문제에 부딪쳐 보자. 국회의원들의 의석 앞에 놓인 그들 명패를 모두 한글로 바꾸려다가 본인들의 거부로 漢字 그대로 적혀있다. 한국 대학생들 중에서 한국 국회의원들의 명패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아마 10%이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1970년 한글전용이 강행된 이래 엄청난 문맹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어 어휘의 70%가 한자어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한자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면 이게 문맹이 아니고 무엇인가?



개탄해야 할 일이 또 있다. 그 많은 대학들의 도서관에는 수만권 내지 수십만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그 장서의 대부분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가 사장되다 시피 되고 있다. 20년 30년 前만해도 한국의 서적들은 漢字와 한글 混用으로 씌여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당대에 자기나라 國語로 씌어진 서적을 그 나라 대학생들이 읽지 못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겠는가?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최고지성들이 당대의 서적들을 버려야한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우리는 옛날 書堂에서 배우던 漢文공부를 다시 부활시키자는 게 아니다. 漢字와 한글을 混用함으로써 한글이 갖는 편리함과 漢字가 갖는 表意力 (표의력), 즉 思考(사고), 造語(조어), 應用(응용), 速讀(속독)의 장점을 아울러 살려서 국어를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장기적인 混用을 통해 어려운 漢字를 점진적으로 도태시키면서 국어를 보다 표현력 있고 읽기 쉬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가나'와 漢字를 混用했다고 해서 그들의 언어문화가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政策당국이 漢字교육에 주저하고 있는 동안 企業들이 올 해부터는 신입사원들을 채용하는데 漢字시험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세계인구의 30%를 차지하는 漢字사용권에서 漢字를 모르고는 경제교류에 지장이 많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기업들이 나서기 전에 정책기관에서 더 늦기 전에 漢字를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도록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전 서울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