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29일자 오마이뉴스 정병진 기자의 보도]



베르너 진론드 교수(트리니티대학 교수, 해석학 분야의 권위자)는 한스 큉의 신학을 소개하면서 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한스 큉(1928~)은 20세기 신학에 있어서 하나의 독특한 현상이다.이 세기에 그와 같이 널리 출판되고, 번역되고, 읽혀진 신학자는 아무도 없다. 동시대의 신학자들 중에 그와 같이 폭넓은 신학적 주제들을 섭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큉은 아직 신부이며 가톨릭 신학자이지만, 로마 바티칸에게 결코 달갑지 않은 존재로 남아 있다. 그는 가톨릭의 일대 종교개혁이라고 일컬어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에 칼 라너와 더불어 크게 공헌한 신학자다. 한데도 그가 교황청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가톨릭 신학자의 중심부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겪은 것은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입바른 소리를 줄기차게 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 대해 일찍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다가 그의 최신작 <그리스도교>와 <가톨릭교회>를 읽으면서 절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토록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하는 신학자가 또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친 김에 이미 국내 번역 출간된 그의 저작은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읽어려고 한다. <왜 그리스도인 인가>, 이 책은 <그리스도인 실존 Christ sein>의 축소판으로 1980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다. 축소판이라지만 글씨가 작으면서도 웬만한 단행본 분량으로 결코 짧지만은 않다. 또한 비록 오래된 책이지만 낡았다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지금도 여전히 신선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큉은 이 책을 통하여 오늘의 맥락에서 그리스도교의 특징과 그 출발점이 되고 있는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스도인다움의 표준이 무엇인지를 해명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신앙인은 누가 더 인간의 근본 경험을 설득력 있게 해석할 수 있느냐를 놓고 무신론자들과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날이 갈수록 인간성이 실종되는 이때에, 무신론자들이나 그리스도인 양자 모두에게 이 과제는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리스도인 인가에 대한 큉의 답변은, 한마디로 진정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훌륭하게 휴머니즘을 실행하는 자들(자유주의, 맑스주의, 실증주의 등, 그 유래야 어떻든)이 나타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인본주의자로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실패할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그래서 큉은 그리스도교에 특유한 점인 예수 자신을 "결정적 척도로 삼고" 그에 대한 기억을 이론상으로나 실천상으로 끊임없이 활성화함으로서만, 그리스도교 이후의 시대에 현대사회의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교가 비로소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예수의 생애와 그 실천적 지향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오늘의 시대적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는 논란의 여지를 많이 남겨 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고루한 교리적 내용만을 되풀이하거나 억지를 부리기 보다는 나름대로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진실에 접근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 충분한 설득력 지니고 있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가 오늘의 교회를 있는 그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비판하면서도 사실상 교회를 위한 신학자임을 알 수 있다. 그 스스로도 본문 말미에서 이러한 고백을하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인인데도 교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교회보다 더 그리스도교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기에 교회에 머문다"(308쪽) 교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무엇보다 예수를 사랑하기에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교회를 예수의 교회답게 쇄신하고자하는 그의 열정과 믿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문장은 만연체로 흐르기 쉬운 학자적인 논문식의 지루한 글이 아니다. 조목조목 잘 설명을 하다가도 단문으로 비약하여 논의하는 요점을 요약하거나 문제를 던지는 그 독특한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흥미와 긴장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의 시대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는 현대의 도전에 직면하여 어떤 합리적 응답을 들려 줄 수 있는지,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로 만드는 핵심인 예수는 과연 누구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얻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