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6일자 한국일보]



‘달과 함께 걷다’ ‘서있는 큰 사슴’ ‘우르릉 천둥’ ‘얼굴에 내리는비’ ‘푸른 초원을 짐승처럼 달려’ ‘지평선 너머 흰구름’ ‘푸른 들판에서 서로 쫓아다녀’ ‘지빠귀가 노래해’. 뭘까? 인디언들의 이름이다. 무슨 이름이 이러냐고? 맞다. 인간중심주의적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이다. 인디언들은 나와 남은말할 것도 없고 자연의 모든 생명과 더불어 서로를 느끼면서 하나가 되어살았다. 사냥을 앞두고 인디언 사냥꾼들은 사냥감인 동물들을 향해 이렇게말했다고 한다.



“친구들이여, 우리는 살기 위해 너희들을 무척 필요로 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이 이 ‘지구 어머니’ 속으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자라게 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 동물들도 그것을 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해서 모든 생명이 순환하고 연결된다.”



인디언 사냥꾼에게 사냥 기술의 정확성은 필수였다. 그것은 동물의 고통을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였다. 상품생산 사회에서의 사냥꾼에게도 사냥기술의 정확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짧은 시간 안에 보다 많이 잡기 위해서’다.



빛과 어둠, 세계와 인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뿌옇게 하나로 뒤섞여있던 신화시대를 박차고 나온 근대의 ‘명석 판명한’ 이성은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면서 자연을 그저 이용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왔다. 인간 제 한몸 편하자고 부수고 밀어내고 온갖 변형을 가해 왔다. 그 결과는? 지구는병들고 썩고 몸살을 앓으며 신음하고 있다. 이게 바로 인간 중심주의 즉휴머니즘(Humanism)의 폭력적인 실체다.



조류 독감으로 세계가 시끄럽다. 육질 좋고 알을 잘 낳게 하기 위해 오리나 닭에게 온갖 이상한 것을 먹이고 유전자 조작을 가한 인간 이성이 맞을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라면 지나친 것일까? 만약 사람 몸에 기생생물이 침투해 들어와 인간의 몸을 장악한다면? 더구나 그 기생생물이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다면?



그건 인간이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을 잡아먹는 것과 같을까, 다를까? ‘기생수’는 이런 문제설정으로 이 우주와 생명체, 그리고 인간중심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번뜩이는 상상력과짱짱한 스토리, 인간중심주의 사고방식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많은 것을생각게 하는 수작 중의 수작.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영화로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너무너무 재미있는 만화책이다.



[유재건 = 그린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