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0명의 다양한 인생 경험 구체적인 상황묘사로 친근감



미국에서 1991년 출간된 이래 '인생의 바이블'로 불리며 40여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93년 말.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것은 97년 이후다.



책 내용 가운데 지나치게 미국적인 상황과 직역에 가까운 표현은 국내 실정에 맞추어 고쳐쓰면서 좋은 반응을 얻어 지금까지 20만부 가량이 팔렸다. 출간 초기의 무반응이 내용을 수정한 다음부터 폭발적인 관심으로 바뀐 데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읽는 사람 모두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낄 만큼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압권이다.



저자를 포함해 그가 운영하는 세미나 참가자 2만5천여 명의 경험이 담겨 있는 만큼 누구나 한번쯤, 아니 매일 집에서 겪는 상황과 대화를 토대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어 독자들이 받아들이기가 한결 수월하다. 독자를 끄는 또 하나의 매력은 많은 인생 지침서들이 범하는 실수인 '...해야한다'식의 명령조 대신 현재의 나, 즉 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지극히 근거가 있고 타당하다는 전제아래 상대방을 이해하라고 충고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설령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나를 바꾸라는 충고에는 거부감을 느끼거나 어려운 일로 여겨 실행에 옮기기를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현재의 나를 인정한 뒤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상대방(이성)도 이해하라는 말은 심리적인 반발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일련의 소소한 사건들을 수긍이 가는 설명과 친절한 어조로 전달하기 때문에 책을 끝까지 읽지않고는 못배기게 만든 것이다. 그레이는 이 책에서 남녀가 서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이 나와 비슷해지기를 기대할 때 긴장과 원망과 불화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을 대하듯 서로 차이를 이해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본다.



그레이는 남녀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재미있는 비유를 든다. 화성에서 온 남자는 수리공, 금성에서 온 여자는 가정진보위원과 같다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의 공감을 얻고자 할때 남자는 항상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황을 악화시킨다.또 여자는 천성적으로 남자를 좀 더 낫게 변화시키려 하지만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남자는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여 싸움이 시작된다.



이 책은 내가 주는 사랑은 상대가 필요로 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상대가 지금 무얼 필요로 하는지 알아냄으로써 불필요한 논쟁과 이로 인한 상처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20000120 /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소리없이 오랫동안 꾸준히 팔리는 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1993년 번역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20쇄가 넘게 팔려온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친구미디어, 1993)도 그런 책의 하나인 것 같다.



이런 류의 책은 시대의 욕구에 부응하는 바가 있는 책일텐데, 그렇다면 그레이의 책이 테마로 삼고 있는 성차이의 문제, 그리고 남녀간의 소통의 문제가 상당수 우리나라 사람들에서도 꽤 절박한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며, 이 책을 서점에서 집어든 나도 그런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의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의 멋진 제목은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비너스)와 아레스(마르스)의 사랑으로부터 제목을 따온 것이다. 그런데 사랑의 연금술양 하는 이 책은 뜻밖에도 그리스 신화를 그리 풍부하게 활용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사랑이 불륜이어서일까? 그레이는 미국 백인 중산층 부부의 애정생활을 돕는 책을 쓰면서, 신화이지만 불륜인 사랑에 담긴 표상들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듯하다. 이 책의 미덕은 우선 풍부한 임상적 사례를 쉬운 표상들로 요약한 데 있다.



미스터 수리공과 가정진보위원회, 동굴에 들어가는 남자와 이야기하는 여자, 고무줄인 남자와 파도인 여자 등등이 그렇다. 성차이를 인정하는 법, 논쟁을 피하는 법, 사랑의 편지를 쓰는 법, 도움을 청하는 법, 이성에게 점수를 따는 법 따위의 실용적인 처방과 구체적인 테크닉의 제시도 꽤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지루하다는 느낌, 그리고 많은 사례에 대해 실용적일 수 있지만, 모든 사례에 대해서 그런 것은 아니며,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의 책이 무엇보다 개념적으로 불명료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가 화성과 금성을 빌려 말하는 성차이란 내 보기에 강박증 남자와 히스테리 여성의 이야기일 뿐이다. 강박증 환자는 타자의 욕망, 타자의 결핍과 만나기를 두려워하며, 그것을 온 힘을 다해 막으려 하며, 그것이 불가능하면 도망친다.



그레이의 표현을 따른다면 남성이 수리공이 되어 즉각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며, 그것이 어려울 때 주기적으로 고무줄처럼 멀어졌다가 되돌아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비해 히스테리 여성은 타자의 결핍과 욕망을 갈망하며, 그것을 채움으로써 타자를 완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여성은 그것이 실패할 때 우물에 빠진 것처럼 침강하며, 그것이 성취될 때 밀도높은 감정으로 솟아오른다. 당연히 남자는 적게 주고 여자는 희생하며, 남자가 적게 주는 것은 그가 이미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개념적으로 파악하기만 하면 몇십쪽의 팸플릿으로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권 분량의 길고 반복되는 이야기로 펼쳐놓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개념적으로 사태를 파악하면 그레이의 실용적 지침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들이 있다는 것이 금세 드러난다. 강박증과 히스테리는 주체의 심리구조이지 성차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성차이의 절대화에 기초한 그레이의 책은 훨씬 빈도가 적지만 강박증 여성, 그리고 히스테리 남성이 타자와 만날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지침도 제공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내보기에 그레이가 주는 지침들은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가 제공하는 지침이란 그저 성차이를 인정하고 적절한 대화의 테크닉을 습득하라는 것인데, 그것의 귀결은 상대의 징후, 상대의 질병을 인정하기이며, 상대가 자신의 질병으로부터 계속해서 쾌락을 길어 올릴 길을 열어주는 것일 뿐이다.



사랑이 타자의 히스테리나 강박증 같은 병조차 사랑하는 것인 한에서, 그리고 징후는 쉽게 해소될 수 없는 것이기에 타자의 병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너무 안전한 타협이며, 타자와의 소통에 너무 일찍 한계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타자와의 소통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레이의 지침을 따른다면 우리는 그 근본적 한계에서 한참 먼 곳에서 멈춰설 뿐이다. 그것은 안온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것은 한계에 이르려 한다.



타자 안에 있는 근본적 이타성, 타자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어떤 기괴하고 끔찍한 무엇, 그녀의 트라우마와의 조우,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기, 그것이 사랑이 한계에 이르려 하는 방식이 아니겠는가?



--- 20010210 / 김종엽 (한신대 교수)









동아일보



“남자가 ‘동굴’이라면 여자는 ‘우물’이다. 남자는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생기면 혼자만의 공간에서 해결점을 찾지만 여자는 누군가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면서 기분을 회복한다. 이처럼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객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1993년 첫선을 보인 후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사랑받는 이유는 이성에 대한 ‘평등한 시선’에 있다.



이 책은 친구미디어의 전신 격인 친구출판사에서 93년 출간돼 5년간 약 25만부가 팔려나갔다. 2000년 재발간 된 후에도 해마다 7만∼10만부를 판매해 10년간 총 45만부를 넘어섰다. 서울 교보문고의 스테디셀러 부문 2월 마지막 주 집계에서도 7위에 올라 있다.



‘화성에서…’는 먼 옛날 화성 사람(남자)과 금성 사람(여자)이 주인공. 이들은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해 무엇이든 함께 나누며 기쁨을 나누지만 지구에 정착한 뒤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에 빠진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0여년간 인간관계 세미나와 부부 상담센터를 운영한 저자는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 수만 쌍의 갈등 극복 사례를 정리했다. 남자와 여자가 의사소통, 정서적 욕구, 행동방식 등에서 뿌리깊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는 길을 안내한다.



회사원 김경화씨(32)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남자와 여자가 근원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연애할 때는 모든 게 좋고 예쁘지만 일단 결혼하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 남녀 간에 더 큰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친구미디어 측은 “구조조정, 가족 붕괴 등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판매량이 급증했다”며 “외국인 부부 상담 카운슬러의 생생한 경험담이 한국 사람에게도 피부로 와닿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남녀가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 20020308 / 황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