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1일자 오마이뉴스에서 퍼 온 글]



MBC <느낌표>가 벌이는 어린이도서관 짓기 운동인 '기적의 도서관'. 하지만 일찍이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전국에는 20여 개의 작은 어린이도서관이 있다. 어린이 문화공간을 표방하는 이들 도서관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도서관 형태이긴 해도,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공공도서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서울시 구로구 주공아파트 단지 내 위치한 '이야기밥' 어린이도서관. 건강한 정신을 위한 주식인 독서를 통해 무럭무럭 자라라는 뜻으로 이름을 '어린이 밥'으로 지었다. 하지만 2000년 6월 20일 개관한 지 3년째인 오는 6월 30일로 '이야기밥'은 무기한 휴관에 들어간다.



아파트를 도서관으로 사용하는 이른바 '가정도서관'으로 운영돼온 이야기밥은 구일초등학교 학생들의 지역도서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지난 6월 7일 이야기밥 홈페이지(ilovei.jinbo.net)에는 휴관공지가 떴고, 아파트 대문에 달려 있던 도서관 문패는 내려졌다.



너무도 죄송스러운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이야기밥이 6월까지만 정상 운영되고 7월부터는 기약없는 무기한 휴관에 들어갑니다.

올해 5월로 개관 3년이 되는 이야기밥입니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어 함께 웃고 울고 보람도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더더군다나 주변의 많은 분들이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신 덕에 지금까지 근근히 이어져왔습니다. 헌데 운영상의 어려움이 여러 가지로 중첩되면서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지고야 말았습니다.

아쉽고 안타깝고 아깝고 슬프고 착잡합니다만, 고심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이야기밥을 성원해주시고 애정어린 눈길로 지켜봐 주신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6월 26일, 이야기밥 어린이도서관에서는 송별회가 열리고 있었다. 6월 마지막 주는 매일 학년별로 송별회가 열렸는데 그날은 4학년 차례였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사온 피자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왁자하게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경진이가 "선생님, 여기 그만두면 '이야기반찬' 하실 거예요?"라고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혜성이는 "여기 오면 선생님 놀리는 게 제일 재밌어요"라고 짓궂게 웃는다. 아이들이 말하는 학교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의 차이는 '책과 토론회'였다. 1500여 권의 장서는 수적으로 많은 양은 아니어도 양서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도서관에 뒤지지 않는다.



전집 위주에, 신간이 별로 없는 학교 도서관보다 아이들이 이야기밥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책'에 있다. 이야기밥 운영교사인 권신윤(35)씨와 김수자(33)씨는 매주 신간들을 체크하고 토론회 커리큘럼을 짠다. 그리고 이야기밥의 책읽는 엄마들의 모임인 '늘새'가 책선정에 도움을 준다.



"000책은 편집이 나빠요, 000는 내용이 좋아요."



아이들은 출판사를 직접 거명하며 '좋은 책'에 대한 저마다의 기준을 내세웠다. 이야기밥 4학년 아이들이 꼽은 양서는 <어른들만 사는 나라> <어둠 속의 참새들> <겁쟁이> <금이와 메눈취 할머니>였다. 특히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곰인형 오토>를 꼽았다.



유태인 아이의 곰인형 '오토'가 겪는 불행과 행복, 전쟁의 참혹상을 그린 이 책은 이라크 전쟁 즈음 열린 독서토론회를 통해 아이들의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김수자씨는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라크전을 아이들 수준에서 바라보는데 적합한 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쟁의 원인이 석유 때문이라든지, 미국도 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들에 대해 아이들은 놀라워했어요. 부모님이나 학교,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얘기와 다른 시각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거죠. 독서와 더불어 토론이 병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야기밥의 한 달 도서열람비는 1만원. 낮 12시∼오후 6시 도서관이 문을 여는 동안 책을 빌려 볼 수 있다. 하지만 30∼40명의 회비만으로는 신간 구입만도 버거운 형편이다. 권신윤씨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남는 방과 거실을 선뜻 도서관으로 내놓았고, 김수자씨가 무보수로 도서관 운영에 동참해 왔지만 경영난은 계속됐다.



"동사무소에도 협조를 구해보았지만 공간을 제공받으려면 일체 회비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도서관이 공간만 있다고 운영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파트 부녀회에도 알아보았지만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주민을 제외하고는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어요."



이야기밥은 초등학생 어린이뿐만 아니라 영유아들에게도 문화공간이었다. 일반 도서관은 36개월이 지나야만 출입이 가능한데 이야기밥을 비롯한 작은 어린이도서관은 이 규정을 깨고 영유아들의 책 읽을 권리도 보장해왔다. 서너 살 아이들도 부모의 손을 잡고와 책을 고르고 부모가 읽어주는 책을 읽는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도 독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송별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손에는 저마다 독서장과 대출카드가 쥐어져 있었다. 독서장에는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작성한 책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와 20년 뒤를 가상하고 작성한 신문기사 등이 적혀 있었다. 또 대출카드는 직접 작성한 책목록들로 빼곡했다. 아이들이 먹고 자란 이야기밥의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