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구원 - 현경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1991년 캔버라에 있은 WCC 세계대회의 주제강사로서 고통당하는 여성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초혼의 제례를 연출하여 교계신문에서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을 때였다. 그러나 그것은 보도 매체를 통한 만남이었고 그녀를 직접 대한 것은 그 후 얼마 후에 내장산에서 있은 한국목회학박사원의 실천신학 세미나에서였다.



현경은 내 눈으로 볼 때 미인은 아니었지만, 눈이 샛별처럼 빛나며 생기가 자르르 흐르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웃음을 띠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세인의 이목을 끌었으며, 자기의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때 그녀는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그녀가 한동안 뜸하더니 뉴욕 유니온신학교 아시아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로 히말라야에 들어가 신의 계시를 받은 세 권의 책을 들고 한국에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다. 그 책이 바로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현경 순례기 두 권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에게 보내는 [미래에서 온 편지]이다.



나는 이 책을 접하고 첫 권을 새벽 3시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너무도 치열하고 열정적인 그녀의 삶이 가슴에 다가왔고, 그녀의 내면에 잠재해있는 한과 눈물에 내 가슴도 찡하게 감동이 되었으며, 이제는 닳고 닳아 감동도 눈물도 쉽게 나오지 않는 이 남성 목사의 메마른 눈망울에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것이었다.



한줄 한줄 문장을 되새겨 읽으며, 뇌리에 떠오르는 느낌들을 책에 기록하며, 그렇게 한 권을 정독하여 마쳤다. 나는 첫 권을 아내에게 읽으라고 권하며 넘겨주고 한동안 둘째 권을 읽을 수가 없었다. 너무 쉽게 해치워버리는 것은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였고, 너무 귀중하고 아까운 책이 한꺼번에 끝나버리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주동안 되새김질을 한 다음 다시 두 번째의 책을 시작하여 눈이 시리도록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빨리 읽고 이 책에 대한 내 느낌을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꿈 속에서도 현경의 책에 대한 느낌을 되새기고 있었고, 이 책을 통해 나의 삶에 새로운 영적인 통찰을 얻고 싶었다.



현경은 자기의 지나온 일생을 통해서 겪어온 경험과 함께 한국교회의 보수적 근본주의의 편협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상처받은 여성들과 제3세계 민중의 한을 대변하면서, 새로운 정의와 평등에 입각한 생태영성과 여성적 영성을 주장하고 있다. 현경은 그것을 여신종교로 명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종교계는 물론 한국의 종교계는 남성적 신관에 지배되어 여신적 풍요함과 생명성을 잃어버려 왔다는 것이다. 보수적 기독교 교리에 지배되어있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는 무속적이고 미신적으로 생각될 수 있으며, 또 다른 이단적 종교를 신봉한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는 과감한 발언이다.



그러나 현경은 이미 그런 제도적인 종교와 일상의 세계를 초월한 사람이다. 이미 죽음의 세계를 경험하고, 남은 자기의 삶은 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 자기의 삶은 생명을 살리는 살림이스트 전사로서, 살림이스트 여신의 메신저로서 생명을 걸고 이 일을 수행하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제 그녀가 가는 곳에 평화의 기운이 느껴지게 되고, 생로병사에 허덕이던 그녀의 전생이 끝나고 경이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면 이것이 바로 영생이요, 평화요, 신의 구원 역사가 아니겠는가?



보수주의 기독교가 현경을 마녀나 무당으로 표현하고 배척하든지 어쨌든지 간에 현경은 이미 세계적인 신학자가 되었고, 그녀는 여성으로 당당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몸으로 신학을 추구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현경은 삶으로 예술을 창조해나가며, 여성의 영성으로 신의 임재와 구원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녀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녀의 신적인 접근이 나에게는 필요치 않을 것 같은 장신구나 신상이나 향이나 촛불에 너무 의존해 있는 것 같고, 19세기를 진의 세기, 20세기를 선의 세기, 21세기를 미의 세기로 보는 그녀의 세기관이 너무 작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녀의 신 접근 방법이고, 이것 또한 그녀의 한계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치열한 해탈과 오랜 방랑 끝에 얻은 깨달음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는 그녀의 길을 가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여성들이 아름다워지고, 생명 살림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라면-



1972년에 예술의 신학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신학대학에 들어간 내가 오랜 여정 끝에 이제 늦철이 들어 열심히 글을 쓰며 미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는데, 이제 영적인 도반을 만난 것 같아 든든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이제 나도 외롭지 않게 내 삶에서 신적인 영성을 추구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 책은 신이 나에게 주신 선물일 것이고, 내 신학과 창조적 삶에 격려와 용기를 얻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윤종수 목사(생명둥지 대표, life9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