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11일 금요일 하나님과 가까이

성경 창세기 4:16-26 찬송 430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가인도 아벨을 죽임으로써 그 땅에서도 다시 쫓겨나 평생 이리저리 떠돌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수록 행복해지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불행해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끝없이 방랑생활을 해야만 했던 가인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았다. 그런데 16절에 나오는 떠나다는 단순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달아나다, 피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인이 하나님께 쫓겨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가인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피하여 도망하려는 마음이 더 컸다. 가인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다. 그렇게 간 땅이 놋 땅이다.

놋은 방랑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거하다계속하여 정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평생 방랑하는 삶을 고집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기보다 방랑생활을 하더라도 죄의 즐거움을 택한 것이다. 저주 받은 삶을 가인 스스로 원했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다시 동침하여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고 지었다. 히브리어로 셋은 지정한다, 대신한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아벨을 대신할 자를 보내주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셋이 다시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는데 그 때 사람들이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이 세상은, 죄악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는 가인의 후손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인 셋의 후 손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오늘 본문은 화려한 가인의 후손들과 소박한 셋의 후손들이 대조되고 있다. 가인의 후손들의 도성에는 유목문화, 철기문화, 음악을 통한 사치와 향락의 문화들이 있다. 사람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이런 화려한 문화로 인하여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나 셋의 후손들에게는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오직 한 가지 설명 뿐이다. 그들은 화려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그들에게 모이지도 않았다. 그저 하나님을 섬기며 소박하게 살아갈 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세상에 화려하게 드러내며 살기를 원한다. 좋은 집과 좋은 옷과 좋은 차로 자신의 화려한 삶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세상의 것들로자기를 자랑하고 과시하려는 이러한 욕망이 바로 가인의 문명을 이룬 기초가 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우리는 오히려 소박하지만 하나님 섬기려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하나님의 백성인 셋의 후손들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남들처럼 화려하게 살지 않는다고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내 마음에 기쁨과 평강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늘 하나님과 가까이하기를 즐겨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세상 즐거움과 기쁨에 취해 하나님을 떠나는 인생이 아닌, 날마다 주님과 동행 하며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