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28일 금요일 성도의 언어생활

성경 마태복음 5:33-37 

찬송 420

 

맹세는 자신의 말과 행실이 진실하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증인으로 부르는 행위다. 모세 율법은 맹세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서원한 것을 지키도록 명령하는 계명 자체가 맹세의 존재를 인정한다(19:12; 30:2; 23:21). 신약성경에서도 맹세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말이 정당함을 주장한다(고후 1:23; 1:20). 그렇다면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는 하나님 앞에서 구속력을 갖는다. 유대인들은 편의상 반드시 지켜야 할 맹세와 지키지 않아도 될 맹세를 구분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에 해당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되지 않는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맹세의 핵심은 신성을 모독했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서약을 이행하였느냐의 여부다. 하늘을 두고 맹세했는지 땅을 두고 맹세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맹세를 듣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고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다(66:1). 예루살렘 성은 곧 하나님의 도성이다(48:1~ 2). 어느 것 하나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무엇을 두고 맹세했건 우리의 약속은 그 자체로 하나님 앞에서 구속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약속처럼 진실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언어생활은 단순해야 한다(37).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과장과 포장을 버리고 단순하게 말해야 한다. 맹세와 과장은 언제 필요할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설득할 때 필요하다. SNS 문화에 친숙한 우리는 과장, 포장, 자랑이 친숙하다. 죄라고 여기지 않는다. 의도적인 통계 조작, 학자연 하는 글솜씨로 타인을 속이고 오도하는 것을 실력이라 여긴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온갖 괴담과 음모론을 꾸며낸다. 사실보다 조회 수와 공유 수가 진리를 결정하는 세상이다. 허위 과장과 위선을 버리고 단순하게 말해야 한다.

셋째, 우리의 언어생활은 진실해야 한다. 맹세를 지키는 것은 값진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값진 일은 굳이 맹세하지 않아도 우리의 언어가 항상 진실한 것이 다. 옳은 것은 그냥 옳다고 말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맹세를 한 것은 지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될까? 예수님은 이러한 위선적인 언어생활을 지적하신다. 맹세가 필요없을 만큼 우리의 말은 진실해야 한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맹세의 여부가 죄를 규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이 꾸밈없이 정직하기를 요구하시는 말씀이다. 굳이 맹세가 아니어도 우리 말씀을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왜곡과 거짓이 아니라 정직과 신실함으로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천국시민이 되자.

 

오늘의 기도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주님을 닮아 모든 말을 듣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단순하고 정직하게 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