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경종집사님께 글의뢰를 받았을때는 올게왔다는 생각에 작지않은 긴장을 했지만 그래도 저에 대한 애정이 깊으시기때문에 그런 부탁을 하셨겠지 하는 마음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이전에 제가 어느 인터넷게시판에 올렸던 글중 하나를 용기를 내어서 드립니다. 어떤 분이 기독교의 여러특징들(원죄론과 구원론등)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가하셨시에 혹시나 기독교를 믿으신다고 하는 분들이 그 글을 읽고나서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곤란을 겪지않을까 하는 기우로 인해 적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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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5910번 제글에 답글을 달아드려야하지만 님이 적은 5941번 글에 대한 짧은 제 소견을 첨가하고자 새롭게 글을 적습니다.

  인간 내면에 베푸는 구원과 평온을 얻기위한 방법에서 님과 제가 차이점이 있네요. 님은 종교는 단순히 개인적 구원과 평온만을 줄수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구원과 평온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라면 그건 다른이의 구원과 평온을 희생으로 이루어질수도 있겠죠. 내가 더 얻기위해선 남의 것을 빼앗아와야만 하기때문입니다. 전체를 고려하지않고 개인만 생각한다면 결국엔 그건 남의것을 빼앗는 것에 대한 명분만 제공해왔다는게 역사는 그대로 가르쳐주기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종교상에서의 구원이나 평온을 언급한다면 사회적구원과 평온을 전제로한 개인의 구원과 평온이어야만 합니다. 그런점에서 종교는 어떤식으로든 타당한 사회구조를 제시해야만 합니다.  유일신앙의 장점은 그 절대자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사회구조가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적인 실례로서 중세의 종교개혁이나 종교전쟁등을 봤을때 소수에 속한 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종교적 자유와 명분을 위해 싸울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제시하는 사회구조를 믿었기 때문일겁니다. 당시의 기독교(중세의 부패한 카톨릭)는 어쩌면 구원이라는건 개인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전체를 도외시하고 개인적인 것에만 주안함으로써 전체적이고 옳바른것에 대한 감각들을 마비시키고 자신들의 실리를 확장시킬수있는 명분들만을 제시했었던거죠. 그렇기때문에 비록 당시의 카톨릭이 현실에서는 명분과 권위를 모두 가지고있었지만 하나님과 성경의 시각에서 비춰본 시각에서는 옳지못했던 거죠. 성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주기도문에 하나님나라가 이땅에 이루어달라고 기도의 모범을 보인건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절대 개인적인 범주에서 머물르지않고 또한 머룰러서도 않되고 당연히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개인들의 희생을 감수해야한다는 걸 강조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회적 구원과 평온이 이루어졌다는 전제하에서 개인이 가져야한 구원과 평온이라는것도 순수히 개인의 능력으로 얻을수 있는것인지 전 물어보고싶습니다. 인간은 無에서 無로 가는 존재입니다. 그런 허무한 존재가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 범위에서 절대평온이나 자유함을 얻어낼수 있을까요. 자신의 주위의 환경과 인간관계들을 도외시하고 막연히 개인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명상이나 공부를 통해서 어디엔가에 다다를수있다는건 너무 배부른 생각 아닐까요. 만약 님이 말씀하시는 개인적 범위에서의 구원이나 평온이 최소한 신과의 교감을 전제한 것이라면 결국엔 신이 창조한 이 세상과의 교감도 당연히 전제해야할 것입니다. 정말로 님의 견해에 철저한 식으로 해석한다면 님은 신마저 제외한 상태에서의 구원함을 말씀하셔야하는데.... 자기 스스로에게서 자기 스스로에게 대한 구원.... 이게 가능하시다고 생각하신다면 더 말씀드릴건 없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영적인 평온이나 사회적 평온을 신에게 의존하며 지내고있습니다.또한 유일신을 전제한다는게 이성적사고에 대한 타협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성적 고민은 어차피 유일신앙이든 아니든 무한할수밖에 없겠죠. 그렇기때문에 님이 말씀하신 구원과 평온을 위한 종교는 유일신앙이든 아니든 그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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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선 5910번 제글에 대한 님의 답글중 핵심문장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1. "이토록 나약한 존재에게 어찌하여 신은 자유의지라는걸 주었는가?
피조물인 인간의 의사를 존중해서 창조주인 자신을 거역할수 있는 권리마져 허용했다?
그 결과가 파멸인데두 사랑이란 단어를 붙일수 있을까요?"

이부분은 제글에 답글을 다신 술래잡기님의 말씀으로 충분히 대체할수 있겠습니다. "...저는 하늘나라에서는 배울수 없는 \'그무엇\' 인가를 이 지구에서 배우고(깨닫고) 오라고 인간들을 지구에 보낸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창조의 공간은 이땅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대속죽음으로 죽음이후의 세계에대해선 모두가 구원을 선포받았죠. 그렇기때문에 이땅에서 맡게되는 죽음이란 하나의 과정일뿐이지 결코 \'파멸\'은 아닙니다.


2. "이상하다는 생각 안해 보셨읍니까?
조상이 죄를 지었다고 왜 내가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죄도 유전이 된다는 논리인데....,"

이 부분도 제가 원글에 적은 내용인데요. 기독교에서의 원죄는 단순히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점에 있지않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서 제가 죄인은 아니라는거죠. 사실 성경을 볼려면 역사적맥락이라는게 정말 중요합니다. 원죄라는것도 첫사람들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걸 말합니다. 그 단절됨을 원죄라고 사람들은 말하구요 그 단절됨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예수가 이땅에 내려와 사람들의 대신해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더더욱이 예수이후에는 원죄라는 개념은 나올수도없습니다. 이미 해결되었기때문이죠.


3. "굳이 문화사의 측면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원죄가 개인의 신앙적 차원에서 겸손을 가르치고 내적 성찰을 배양시켜주겠지만....그럼에 불구하고 사상이라는 측면에서는 완숙하지 못하다고 보는 까닭입니다"

이 부분은 2번에 대한 제 해설로 상당부분 대체할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다시 강조하고싶은건 성경에 나타난 인류구원에 대한 신의 계획과 희생입니다.

첫사람들과 신과의 관계단절- 인류의 고난과 구원자에 대한 신의약속- 구원자의 도래와 희생..

님은 이런 시스템이 완숙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실지모르겠지만, 인류역사 자체를 이정도로 체계화했다면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사상아닐까요. 특히 구약성경이라는건 유대민족이 지내온 역사적사실들을 정리한 내용들인데 그 안에 이러한 인류역사에 대한 탄생과 고난들..그리고 그 현실고난으로부터 전인류에 대한 해방을 수천년전에 예언했다는건 정말로 대단한 내용입니다.

이러한점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수반아님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말은요.. 제가 요즘 어떤 활동들을 하고있습니다. 만약 제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감당하기 힘들었을거에요.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믿는다는게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를 전 잘알고있기때문이죠. 어떤이들은 저에게 의존하기도합니다. 하지만 절대자에 대한 저의 의지가 없다면(그 의지는 제 스스로에 대한 세뇌에서 나오는건아닙니다.) 감당하기 힘들었을겁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건 신에 대한 의지라는게 단순히 저혼자서 신에게 일방적으로 향하는 과정은 아니라는걸 말하고싶어서입니다. 제가 신에게 의존하면 신은 제게 평안함과 힘을 줍니다.

  전 요즘 어떤이가 고통을 받을때 같이 있지도않고 그런 내색을 하지않음에도 그분의 고통을 동시에 느끼곤합니다.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그 고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도하고 감춘채로 다른 얘기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전 그분에 대해 간절한 기도를 드리죠. 대화를 나누다 어느순간 그분의 고통이 사라지는걸 느끼면 전 그때서야 마음을 놓습니다. 물론 그분에게 확인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지만 어느순간도 그 상황이 틀린적은 없었습니다.

  서로도와가며..그로인해 자신의 영혼도 안식하고..그러한 과정에서 신에 대한 따뜻하고 절대적인 신앙은 깊어가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 신앙이라는건 결국 하나님과 나 그리고 창조된 이 세상(과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숙함의 깊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저또한 무한한 절대이성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너무나 아름답게 생각하구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저의 좌우명으로 여기고있기도하죠. 하지만 그 이성이라는 것도 단순히 비판과 대답없는 메아리로만 멈춰서는 안되겠죠.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갈망하며 작은것이라도 깨달았을때 날듯이 기뻐하면서 그것들을 같이 나눌려고 하는게 이성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이 기독교에 대해서 합리적이고 냉험한 비판을 하시는건 고맙게 생각합니다만, 혹시나 그로인해 상처받는 분들의 영혼들도 감안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뜨거운감성과 차가운이성..우리 시대엔 둘다 필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