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항상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성적인 동물이라 합니다.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항상 어떤 것을 추구하고 영위하는 이성적인 동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이성적인 동물인 인간은 지금 내가 하고있는 생각과사고와 행동이 꼭 맞다고 확신을 하다가도 이 "왜?"라는 의문에 부딪치면 자신의 내면적인 세계에서는 자기가 겉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과는 또다른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자기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에대하여 잘못된것을 외부나 내부의 어떤 영향으로부터 받아들여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살아가는게 우리 이성적인 인간이라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우리내부에서는 서로 견제하고 충돌하면서 자기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찿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격하고 지나친 사고와 행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진보적인 성향인 사람들은 대게 이분법적인 사고를가지고 자기가 지금 행동하고 있는 사고하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논리를 대면서 외부의 모든 영향을 몸소 부딪치면서 결단하고 맞서서 설득하고 이겨볼려고 노력합니다. 논리적인 면에서 자기논리가 더 외부위 어떤 직간접적인 영향보다 우월하면 그것이 진리고 옳다고 믿어버릴려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고 논쟁을 통해서 무언가를 계속적으로 외부의 모든 영향을 개혁적으로 뭔가를 바꾸어볼려고하는 시도를 통해서 삶을 영위할려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내면세게에서는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자지내면세계에서 일어나고있는 모든의문을 외부의 어떤 영향과 맞닥뜨리면서 대화나 논쟁을 통해서 해결할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논리가 맞으면 일단 다른 어떤 것을 이해하고 수긍하는데는 완강히 거부하기도 합니다.여기에 이런분들의 사고가 극단적으로 위험하다고 지적하는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하면서도  내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현상을 보면서 내면적으로는 "왜?\'라는 물음하에이모든 현상을 이해하면서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있어서 이미일어났거나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좀더 동등한 위치에서 받아주고 포용할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항상 내가 비유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나무는 너무 곧지만 역경과 풍파에 휘말리면 뿌리는 뽑히지않지만 부러지고 우람한 고목나무는 역경과 풍파가 닥치면 꺽이지는 않지만 뿌리체 뽑히고 갈대는 가날프기짝이없지만 역경과 풍파가 닥쳐도 심히 흔들리기만 할뿐 역경과 풍파가 지나면 자신의새로운 모습으로 대 자연속에서 그 자태를 아름답게 뽐낸다고 하는 말을 자주 말합니다.


전 모든 선지자들고 전도자들이 이 갈대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피를뿌렸기 때문에 믿음의 후손들이 곧은 모습의 파수꾼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믿음의 선지자들이 그 당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받아들이고 맞서 싸우는 것보다는 사랑이란 단어로 이해하면서 또한 자기 내면에서는 자신에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반대의 것들을 깊게 생각해 보면서 역사속에서 자기내면에서 부터 받아들일것은 받아들이면서 서로 견제하면서 충돌하면서 갈대와 같은 태도로 삶을 살았기에 가날픈 모습으로 순교도 할수 있었기에 오늘날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교를 꽃피울수가 있었던 건 아닐까생각합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가지고 그렇지 못한 생각을가진 사람들을 역사의 적으로 생각하고 사상적으로나 사고적으로 단죄하는 이분법적인 생각은 우리를 서로 남으로 극단적으로 갈라놓는거라고 생각합니다.내면에서는 내가 옳지않다고 하는 모든 현상을 두고 고민하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통해 어떤때는 내가 옳지 않다는 것에대해 행동해보고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통해 자기스스로의 자아를 찿아나가는것이 박경수 형제와 같은 나이에서는 필요한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극단화 되고있읍니다. 서로 적으로 규정하고 대치를 하고 있습니다. 합을 찾을 생각은 아니하고 정과 반에만 치우치고 있고 이념과 사상의 환상에만 사로잡혀서 현실을 외면하고 있고 그러한 이상만 성취 될수만 있다면 도덕과 윤리는 하나의 거추장스러운 옷에 불과하다고 벗어던질려고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지금 사회와 이념적 위기를 맞는것 같습니다.


단지 이 모든것이 하나로 정립되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과거의 역사가 문제가 아니고 역사를 바로 이해하지못한 포용하지못하고 지내온 차이지만 분명 우리는 말할수있는 것은 우리는 적이아니고 우리서로가 사상적으로나 사고적으로 단죄해야할 대상이 아니라는겁니다.


우리교회가 참으로 옳은 말하는 것에는 익숙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모두가 명심해야할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을 하는 사회와 사람들을 단죄해서는 않됩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단죄하는 것보다는 자기 성찰과 고민을 더 많이할때 교회가 번창하고 성도들이 성숙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경수 형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기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너무도 잘봐왔기에 앞으로도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리메김을 할꺼라고 믿습니다.


 


                                                         유  기  우 집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