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참사, 단순과실일 뿐인가







여중생 두명이 탱크에 치어 숨진 것과 관련 미8군 사령관과 주한미대사가 사고직후 유가족에 조의를 표하고 외교통상부에 철저한 조사 약속을 하는 등 미군 당국은 적극적이고 빠른 대처를 보였다.

미군의 이같은 조치는 그동안 미군 피해 처리에 소극적 입장을 보여왔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로 최근 월드컵 미국전에서 안정환 선수의 '오노 세리머니'와 건설노동자 전동록씨의 고압선 감전 사망 등 한국사회 곳곳에 팽배해 있는 미국반대 분위기를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반영하듯 미군은 지난 15일 오전 8시 유족들에게 장례식을 치르면 오후 4시에 유족, 사회단체 대표, 언론 등이 미2사단장과 면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같은 제의에 유가족은 오전 9시 자녀가 다니던 조양중학교에서 노제를 지낸 후 벽제화장터로 가 장례를 치렀다.



[사진] 핏자국이 선명한 사고 현장, 갓길 하얀선을 넘어 있다. 파주에서 양주 덕도리 방향의 효촌리 고개.





그러나 미군 측은 오후 4시 유족들만 영내로 데리고 들어갔으며 사회단체와 언론은 전면 통제했다. 영내에 들어 간 유족들은 미군의 약속 번복에 항의, 면담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왔다.

미군 측이 장례를 치르자마자 약속을 깬 이유는 이번 사건에 사회단체가 개입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반미감정 확산이 우려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 정도로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훈련장 주변과 탱크 이동 구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이번 사건 처리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 동안 숱한 피해를 겪으면서도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미군의 실수나 과실을 믿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15일 새벽 2시. 경기 파주시 장파리 마을 가운데로 탱크가 지나갔다. 탱크 소리에 잠을 깬 주민들이 밖으로 나와 탱크를 막았고, 이때 미군장교가 '민간인은 깔아 죽여도 괜찮다'며 계속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또 지난 2월 12일 오후 7시 설날에는 미군 무장병사가 '설날에 꼭 이렇게 다녀야 되는 거냐'며 항의하는 주민을 총개머리 판으로 어깨를 내려치고 총부리로 얼굴을 찔러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혔다. 그리고 미군은 훈련차량 앞에 쓰러져 있는 주민을 그대로 둔 채 운전병에게 '렛츠 고'를 명령했다. 때문에 미군은 약소국 국민을 무시해도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으며 여중생 사건도 그런 차원에서 일어났다고 믿는 주민들의 생각도 무리가 아니다.

또 훈련 중 발생하는 피해 책임과 처벌이 불평등한 '소파규정'에 의해 '한국정부가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빌미로 사건 자체를 아주 가볍게 생각하거나 처리하고 있어 미군들이 주의를 게을리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피해 예방책 없이 여중생 참사 문제를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하는 것에 불안해하고 있다.

여중생이 숨진 현장에는 흙으로 덮고 닦아냈어도 핏자국이 선명했다. 처음 사고를 목격한 심양의 이모부 홍기식(54)씨는 당시의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처음에는 내 조카인 줄 몰랐어요. 궤도에 깔려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어서 누구네 아이인가 하고 보호자가 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글쎄 내 조카잖아요"

현장 주변에는 으깨진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사용됐던 비닐과 장갑, 그리고 학생 것으로 보인는 운동화가 뒹굴고 있었으며, 비닐에는 살점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사고를 당한 지점은 차로의 하얀선을 넘어 있었고, 갓길 옆쪽은 약 2m 높이의 둑이어서 탱크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미군측은 "운전병 옆에 타고 있던 병사가 갓길을 걷는 여중생을 발견하고 정지를 명령했으나 장갑차 소음 때문에 운전병이 듣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탱크에서의 의사 전달은 모두 무전교신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구두로 정지 명령을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운전병과 탑승자가 교신용 헬멧을 벗고 운전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 선도차의 역할은 장애물이 나타날 경우 뒤따르는 차량에 주의를 경고하는 그런 역할인 점을 감안할 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선도차는 여중생을 목격했을 것이고, 이를 즉각 교신으로 알리거나 아니면 정지를 해 탱크를 안전하게 유도했어야 했다. 특히 사고 지점은 마을 앞인데다 도로의 굴곡이 심해 선도차의 역할과 안전요원 배치가 매우 필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미군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이번 사건은 단순 운전병의 과실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한 미군측은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여중생들이 피할수도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고 현장은 갓길 옆에 2m 높이의 둑이 있다. 실제 여중생들이 장갑차 소리를 들었다해도 갓길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지형이다.

유가족들은 운전병의 음주운전을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당시 목격자들 역시 운전병의 얼굴이 술마신 모습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음주운전 여부는 한국측에 수사권이 없어 미군측 스스로가 밝히기 전에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13일 오후 미군 다그마전차훈련장의 쓰레기를 조사한 결과 맥주, 양주병 등이 목격됐다. 사고를 낸 부대가 마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훈련 중 음주 흔적은 역력하다. 따라서 훈련 중 음주 허용 여부와 음주운전 개연성이 제기되고 있다. 훈련차량 이동 피해에 따른 총체적 안전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니리포터 이용남 기자 hjphoto@kg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