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방문하셔서 진지하고 심히 용맹한(^^) 글을 남겨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근데 제가 한참 치던글이 갑자기 뿅사라져버려서 저의안타까움도 하늘을 찌릅니다. 누가 내글좀 구원(?)해주세요...ㅋ.  준석님과 저와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염두하고 제가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아무래도 교회게시판이다보니 현실적인 한계는 인정해주시구요^^.  경건하지 못하거나 비신앙성이 혹시나 도를 넘어서지않을까하는 약간의 시선들도 있을수있으니까요..ㅎㅎ


  아마도 준석님이 같이 생각해보자고 얘기하신 내용들이 이 두가지 질문으로 대충 정리할수 있을것 같아요. 구원의 현재성과 예수로인한 구원의 의미..


  보통 구원이라고 하면 죽는순간에 뿅들려가는것 즉 사후구원을 늘 말하는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죽음을 겪어야만 하는 우리네 일반상식에 그게 어울리기도 하고 성경의 여러곳에서도 사후구원에 대한 내용들이 늘상 언급되기때문이겠죠.  하지만 구원의 현재성에 대한 부분도 성경의 중요한 부분들에서 나오는것 같습니다. 예수가 병자등을 치유하고 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여러곳에서의 선포를 비롯해서.. 누가복음 11장 20절을보면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하시는말씀을보면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같은복음서 17장 20-21절을보면 바리새인들과 하나님나라의 도래시기에 대한 논쟁중에 훨씬 분명한 그런내용의 구원을 말씀하시죠.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수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있다 저기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현재성과 미래성에 대한 논쟁은 현실적으로는 마음이나 영의 구원의 의미확대를 어느정도까지 하느냐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것 같아요. 실제로 구원이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언급한것처럼 우리 안에 현재 임하였고(11장) 있는거라면(17장) 이미 마음의 구원을 통해 우리는 천국과 현실을 공존하는 생활을 한다고 할수있겠죠. 곧 우리네 땅에서의 삶이 또한 이미 구원받은 축복가득한 삶이라고 정의내릴수 있을겁니다. 또한 현재이미 구원받았다는걸 인정한다고 해서 사후구원을 부정해야하는건 아니겠죠. 어차피 현실공간에서의 우리네 육체는 죽음이라는 과정을 멋지게(^^) 한번씩은 겪어야만하쟌아요. 사후구원과 이미우리에게임한구원은 그런면에서 서로 조화될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인 구원은 그래서 영과마음으로 이미 구원받은 그 구원이겠죠. 사후구원이야..머 그냥 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이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게 도대체 어떤의미일까... 아주 단순하지만 해답내리기는 역사적으로 늘 어려웠던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천년전에 이땅에 내려온 존재가 단순히 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생각하는걸 믿음이라고 하지는 않겠죠. 만약 그런게 믿음이다면 그건 코메디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단군을 그렇게 믿어라고 한다면 마치 그냥 웃어버리는것처럼요.


  저희담임목사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부분이시기도하고..그런것같아요. 예수가 단순히 어느순간에 이땅에 내려온게 아니라 첫사람인 아담과하와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징벌을 받는 그순간에서부터 하나님은 인류구원의 메세지 즉 예수의 도래를 예언합니다.(창세기 3장15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것이니라). 그후 수많은 선지자들과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해(애굽에서의 고난과 출애굽을통한 구원등) 구세주를 통한 인류구원(하나님과인간과의 완전한관계회복)을 실제로 \'현실\'의 역사가운데에서 예언해오고 진행시켜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예수란존재가 세례요한과 천사들의 축복..그리고 요단강에서의 세례를 통한 하나님의 직접 임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과 이땅에서의 모든인간의구원을 위해 자신이 단번에 죽어야만하는 슬픈 하나님의 아들의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한것이겠죠.


  물론 거기에서도 예수를 믿는다는게 과연 그러한 예수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우리의 이성가운데 받아들여야하는건지에 대해선 또 생각해봐야하는문제라고 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라는 존재의 정체성과 역사성에 대해선 제가말한대로 수긍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그 예수란 존재를 어떻게 무조건 내가 하나님의아들로 받아들여야하는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기때문이죠.  거기에서 이제 예수를 믿는다는게 무언지에 대한 아주 냉정하고 어찌보면 너무니 비신앙적인(^^) 논의들이 나오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히 말하고싶은건 성경의 어느곳을 보더라도 막연하게 신을 너의 머리속에 집어넣으라는식의 강요는 존재하지않는다고 확신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건 우리가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하여야한다는걸 말하겠죠. 이러한 마인드는 율법의 형식성이 강조되었던 구약에서조차도 똑같이 해당되었던 내용입니다. 이사야1장 11절이하를 보면 "여호화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사라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뿐이니라. 헛된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게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베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예수를 믿는다는건 우선 예수가 누구인가 그리고 왜 이땅에 내려왔는지에 대한 그 의미를 파악하는게 우선이겠죠. 아담이후 끊어진 하나님과 인간과의 불완전한 관계를 회복하시고 이땅을 하나님의 아름다운 에덴동산으로 다시 만드실려고 수천년전의 계속된 예언가운데서 내려오셨는데 다시 당신이 예수를 아냐 모르느냐에 대한 지적인 내용을 가지고 구원을 왈가왈부한다면 적당안해보이기도하죠^^. 말로 예수믿는다고 하면서 모든 나쁜짓을 하는인간들이 당연히 죗값을 치뤄야겠죠..ㅎㅎ .인생의 모든 고민들을 짊어지며 진리에 대한 고민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하는사람들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들을위해 죽으신 바로 그 본인들 아니겠나요. 그래서 날마다 불완전하게 드려야했던 구약의 제사와는 달리 예수의 죽으심으로인한 대속제사는 모든걸 완전하게 한게 아닐까싶습니다.


  그 이상의 얘기는 저희가만나서 사적으로 나누도록하죠.. 자살에 대한 부분은 결국 구원의 현재성 그리고 예수구원의완전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것 같아요.. 혹시 게시판에서 준석님이 원하시는 명백한 해설이 나오지않더라도 혹시나 실망하지마시구요...여긴 교회게시판이쟌아요^^.. 그래도 좀 형식의 틀이 아무래도 지켜지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


  그럼..평안하시구요... 이렇게 모든이들이 간직할만한 고민을 직접 적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