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믿음이 구원을 위한 필수방편으로 언급되기도 하고, 일상에서는 저사람 믿음이 좋네 나쁘네 식의 양적인 면에서도 측량이 가능한것처럼 언급되어지곤한다.

히브리서의 그 유명한 믿음장인 11장 1절2절을 보면 믿음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한국어로 이해하기엔 늘 어려운 구절이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영문판에는 어떻게 나오나 오늘 찾아봤다.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This is what the ancients were commended for.(NIV)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report.(KJV)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the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
For by it the men of old gained approval.(NASB)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옛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공동번역개정)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표준새번역)


여기서 NIV와 공동번역이 다른 번역들과 작지만 커보이는 차이가 있는게 보입니다. 즉 다른 번역들은 믿음에 대한 정의에 대해 명사(실상, the substance, the assurance, 확신)임에 반해 NIV는 is being sure of 공동번역은 보증해주고라는 동사형을 취하고 있다.

만약 믿음이라는게 ~해주는 식의 동사형이라면 우리는 믿음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채 그 기능에 대해서만 파악해야 하는 가슴아픈 과정을 밟아야만 하는것 같다. 즉 믿음이란 무엇이다라는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단지 믿음이란 어떻게 해주는것이라는 식의 삶에 대한 방법론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 동사형은 배제한체 명사형으로 믿음을 접근해보기로했다. 그런데 표준새번역이 KJV의 the substance를 확신으로 번역한거라면 그 용어사용이 분명하지 못해보인다. 과연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라는게 뭔가. 사실 이해하기 힘든말이다. \'the substance\'는 확신이라는 극히 감정적인 용어보다는 본질.실체.와같은 사물적인 용어에 훨씬 가깝다.(물론 표준새번역의 해석이 KJV를 표본으로 번역한건 아니겠지만)

만약 \'the substance\'를 실체나 본질로 번역한다면 우리에게 훨씬 이해가 분명해진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본질)\'이라고 정의내릴수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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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까지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장에 대한 하소연(?)을 하는데는 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내 주위에 정말로 자그마한 실오라기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걸 빛이라고 말하는데 그 빛이 자신들에게 너무 멀리있는것 같아 아파하는 모습들을 자주 보곤한다.

그들은 그 빛에 대한 \'믿음\' 삶에 대한 희망이 자신들에게 다시 올거라는 실오라기같은 \'믿음\'을 가진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있다.

그들에게 \'믿음\'은 접근해서 잡을려고하는 분명한 실체이지 단순히 발악하는 과정이거나 자기최면에 빠진 맹목적인 확신은 아닌것이다.

그들은 자유롭고 싶어하고 삶으로부터 무한한 평안을 얻고자한다. 그들에게 \'자유\'와 \'무한한 평안\'은 분명히 실체인 것이다. 그들에게 믿음은 자유나 평안에 대한 접근방식이나 노력이 아니라 바로 자유와 평안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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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들에게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선 무언가를 할려고하는 과정은 생략하자고 말하고 싶다. 기도하는것, 찬양하는것, 봉사하는것, 예배드리는것 등...모두 한번 생략해보자. 물론 그들이 믿음을 좋게(?)는 하겠지만 믿음이라는건 그 자체로 본질을 가지고있는 것이기때문에 믿음을 좋게하는 과정과는 구분해야하기 때문이다.

난 사실 대답하기 힘들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자유\'와 \'평안\'이 내 믿음일수도 있다. 물론 그러한 자유와 평안이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죽음을 통해 이루어질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하나님과 예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난 수송교회 청년회원님들과 같이 고민해보고싶다. 우리는 \'본질\'이나 \'실체\'를 너무 망각하고 살아온것 같다. 본질에 대한 과정들은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찬양이나 봉사.. 거기에 대한 감사와 갈채...

우리 청년회원님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자유...무한한 자유와 평안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물어보고싶다. 혹시나 자기자신에게 그러한 믿음의 본질을 망각시키거나 왜곡시키는 부분들이 있는지 통곡하며 자문해봤으면 좋겠다.

흐르는 시간속에서... 결국엔 믿음의 본질인 바라는 것 하나 없이 신앙생활하다 회칠한 무덤으로 늙어만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찾아볼수 있다. 믿음없이 살다가 가는 이들 불쌍한 영혼들... 이미 20대30대에 70대의 사고방식과 신앙관을 가져버리게되는 안타까운 현실속에서 과연 우리가 이제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해야하나 하는 안타까운 고민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