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집사의 믿음에 관한 글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깊이 있게 고민하고 연구를 한 글을 읽으면서 나도 깊이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히브리 11장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였고 내 나름 대로 해석하여 전했다. 히브리 기자가 3절 이하에 인용한 예들을 보면 그 기자가 말하려고 한 것이 어떤 것인 지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다. 거기에 인용된 믿음의 조상들은 바라는 것들을 지금 이미 가진 것 처럼 믿었고 아직도 보지 못한 것을 본 것 처럼 증언하였다. 그것이 믿음이라고 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하나님이 나의 미래임을 믿는 것이다. 몰트만교수는 하나님=미래 라고 등식화 하기고 했다. 나의 내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 자는 오늘 평안하고 자유하다. 믿음의 본질은 송집사의 해석과 같이 평안이요 자유다. 죽음앞에서도 자유하고 평안하다 왜냐하면 영원한 하나님이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이런 믿음을 경험하지를 못한다. 이유는 나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때 믿음이 요청됨에도 불구하고 그런 믿음이 없기에 평안과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그래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한다. 그런 믿음을 얻기 위해서이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그 자체가 믿음이 아니고 그 것을 통하여 믿음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평안과 위로와 자유의 은총을 실감한다. 나의 믿음 없음에서 시작된 기도가 나의 믿음을 확증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과정과 본질 모두에서 믿음은 해석되었으면 한다. 이 오묘한 믿음의 내용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송집사의 고민이 많은 젊은이들의 고민으로 이어지고 어른들의 고민으로 이어져서 참 믿음의 실체를 터득하고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